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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두 사람의 이야기 - 수전 셀러스, <그녀들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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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긱또 댓글 2건 작성일 16-03-1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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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도서

수전 셀러스, <그녀들의 방>

강수정 역, 2015.03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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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 이야기는 단순히 자매간의 애증 관계, 혹은 여성 예술가들 사이의 미묘한 경계심과 질투심만으로 범벅된 소설로서 읽히지 않는다. 수전 셀러스의 <그녀들의 방>은 내면적으로는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었지만 온전히?함께이기엔 힘들었기에?행복을 품에 안고 눈감을 수 없었던 두 여자의 예술적 투쟁으로의 레즈비어니즘을 이야기한 작품임에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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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화자인 바네사 벨은 자신의 여동생 버지니아 울프를 가리켜 ‘세상과 맞설 때 너와 나는 자연스레 동지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어처구니없는 세상, 즉 몸가짐이 단정하고 헌신적인 숙녀 혹은 천사의 모습을 한 보좌관과 같은 어머니를 요구하는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들이 생득적으로 취하게 된 여성이라는 성별은 자매가 가진 예술적 야망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버지니아는 숙녀와 천사의 완벽하고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펜 끝으로 찔렀으며 바네사는 그 생생한 살해 장면을 그녀 정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조하고 받아들인다. 매우 정서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시냅스형성이 둘 사이의 가교가 되어 그녀들의 애정 관계와 예술 세계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바네사는 붓으로, 버지니아는 펜으로, 아름답고 처연한 달음박질을 해나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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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는 바네사의 그림에 대한 묘사가 자주 언급된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바네사의 그림 속에서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버지니아의 영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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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계통의 두 색이 서로를 피하고 또 부르는 모습이 매혹적이다. 이따금 캔버스에서 한 발 멀찍이 떨어져서 봐도 다른 건 보이지 않는다.(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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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계통의 붉은 색들이 그림 안에서 서로를 매혹할 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직사각형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원하는 공간을 만들어 낸 바네사는 그제야 비로소 스스로가 ‘내 집’, 곧 ‘자기만의 방’의 주인이라고 느낀다. 동시에 바로 다음 장에서 버지니아의 존재를 어두운 주홍색이 다홍색에 섞여든 빛깔이라 표현하며 그녀가 있음으로 인해 자신의 흐릿한 색감이 빛을 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바네사의 예술에 있어 버지니아가 필수불가결한 존재였음을 뜻하고 이것은 물론 버지니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버지니아는 자신의 가족과 그 주변의 인물들에 허구적 상상력을 덧붙여 생생한 문학작품으로 버무려내는데 그 작품들은 예술적 이상을 위한 것임과 동시에 바네사를 위한 것이었다. 소설 출간 전 자신도 좋아할 만한 책이냐는 바네사의 질문에 버지니아는 희미하게 애원하는 투로 대답한다. “나야 그러길 바라지......내가 하는 일은 대부분 언니를 위한 거라는 거 알잖아.(p.126)" 이외에도 바네사가 유달리 사랑했던 형제 ‘토비’의 이야기를 오직 바네사를 위해 쓰기로 한 점 등이 그러하다. 그녀들의 예술은 서로를 떼어놓고는 완성될 수 없었고 바네사는 버지니아가 있음으로 인해 균형을 유지하고 작품의 의미를 채울 수 있다고 소설 속에서 덤덤히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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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이 단순히 뜻을 같이 하는 동료이자 서로의 뮤즈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추구하는 예술적 이상에 있어서도 같은 팔레트 구획의 색깔처럼 연결된 존재였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연결은 결코 누군가가 대체할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존재감과 성애적 감정 자체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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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의붓 언니의 이른 죽음,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의붓 형제들의 정서적 학대 속에서 두 사람은 오롯이 서로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애정의 영역을 오랜 시간 공유하게 된다. 언젠가는 자신들을 두르고 있는 그 모든 족쇄로부터 벗어나 둘만의 안락한 세상 속으로 뛰어들기를 꿈꾸며 그 어떤 사랑의 연인보다 친밀한 시간을 어린 시절부터 함께 보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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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침대에 누워 부둥켜안는다. 요양원의 벽이 사라지고, 우리는 한밤중에 놀이방에서 단 둘이 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너는 나의 말썽꾸러기 염소, 나의 웜바트, 나의 생쥐다. 나는 비단처럼 부드러운 너의 털을 쓰다듬고, 너는 코를 내 뺨에 비빈다. 욕심 많은 원숭이 같은 네 입술은 배가 고픈 것처럼 장난스럽게 내 목을 잘근잘근 씹어댄다. 나는 다시 한 번 너의 돌고래 엄마가 되고 너의 입맞춤에 끈적끈적한 침 범벅이 된다. 아무도 우리를 괴롭힐 수 없는 바닷속 깊은 곳으로 너를 데려가줄게.’(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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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버지니아는 결혼한 바네사의 남편 클라이브에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남긴다. “첫사랑을 대신하기란 힘들어요. 돌고래들은 다 아는 사실이죠.(p.102)” 그리고 둘만의 이야기에서만 주고받아지곤 했던 ‘돌고래’ 이야기에 바네사는 공연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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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에게 있어 문학에 대한 애정을 제외하고 평생에 걸친 단 하나의 사랑이 있었다면 아마 바네사였을 것이다. 그에 대한 암시가 소설 곳곳 버지니아의 대사나 두 사람 간의 대화, 마주침에서 은연중에 드러나 있다. 소설 속에서 버지니아는 클라이브와 만남으로써 자신의 통제력 너머로 빠져나가는 관능적인 언니를 바라보며 펜으로 종이를 맹렬히 긁어대고 후에 언니가 가지게 된 아이에게도 강한 질투심을 느낀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버지니아 혼자만의 쓰라린 애정이 아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바네사에게 있어 버지니아 또한 평생 대체할 수 없었던 사랑의 존재이자 연인이었다. 보이지 않는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감정의 실이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처럼 두 사람을 강하게 이었고 바네사 또한 실을 감아올리듯 소설 전체 속에서 끊임없이 버지니아를 부르고, 그리워하고, 찾아 헤맨다. 심지어 레너드와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것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동생의 소식을 듣고 기운이 나서 곧바로 두 뺨에 생기가 되돌아 올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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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네사는 끊임없이 사랑할 존재를 찾는다. 하지만 단지 예술적 신념이나 육체적 끌림으로 인해 이어져 온 남성과의 관계에 있어 내적으로 충만한 만족은 결코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바네사가 함께 그림을 그리던 남자, 던컨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 또한 그녀가 그 안에서?버지니아의 영혼을 찾았을 것이라는 사실이 암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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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보아 주고 문학적으로 지지해 준 남편 레너드 울프에게 죽기 전까지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했던 버지니아였지만 삶의 커다란 결핍을 느꼈던 그녀는 결국 강둑의 돌을 주머니에 한가득 넣고 차가운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세상은 우리의 예술작품이고 우리는 섭리의 한 부분‘이라 언니에게 이야기했던 버지니아는 바네사와 온전히 함께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그녀가 죽은 뒤 바네사는 자신이 그린 그림 속 여자가 사실은 붓이 아닌 펜을 쥐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는 예술도, 삶도, 그 모든 것이 두 사람간의 강한 유대이자 연결에서 비롯된 것이며 심지어 그 자체라는 사실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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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네사는 죽은 버지니아의 마지막 소설 표지 작업을 맡는다. 두 사람이 세상에 대해 맞서고 투쟁하고자 선택한 수단이었던 스스로의 문학과 그림이 완전하게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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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 중에서 한 사람이 항복하면 또 한 사람은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투쟁에서 흘린 피를 목격한다. 그리고 저 멀리, 괴물처럼, 찬란한 색깔의 풍선이 둥실둥실 떠간다.(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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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바네사는 이젤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 노랗게 빛나는 햇빛을 응시하며 버지니아에게 독백한다. ‘네가 옳다. 중요한 건 창작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p.299)’라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버지니아에게 보내는 일종의 서신과도 같아 보인다. 함께 세상과 예술에 대한 꿈을 꾸며 사랑을 나누고 둘만의 해저로 들어가 걷기를 원했지만 이룩하지 못한 것의 완결에 바치는 사랑의 경구가 색색으로 흩뿌려진 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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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또

못말리는 이상주의자. Kid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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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긱또님의 댓글

긱또 작성일

<p>엇, 대신 첨부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다음번에는 말씀해주신대로 해보고 모르겠으면 메일로 연락드릴게요! 좋은 하루 되세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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