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일 수만은 없는 부정이라면 ― 이은조, <나를 생각해> > 전지적 퀴어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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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일 수만은 없는 부정이라면 ― 이은조, <나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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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리 댓글 0건 작성일 16-02-2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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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또는 스스로와 사회 사이에 대한 크고 작은 괴리감을 느끼며 살아가고는 한다. 그 과정에는 체념, 부정, 실망 같은 경험들이 거의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이 논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괴리감이란 삶을 나타내는 징표의 하나라고 봐도 되겠다. 이은조의 <나를 생각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괴리의 다양성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바로 나에게서, 당신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다양성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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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ial [명사] 1. (무엇의 사실성·존재에 대한) 부인[부정] 2. (권리 주장에 대한) 거부 3. (고통스럽거나 불쾌한 사실에 대한) 부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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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등재된 ‘디나이얼’의 뜻이다. 외에 거부, 거절, 절제, 극기 등의 뜻도 가지고 있다. 요즘 들어 디나이얼 퀴어에 대한 이야기를 유독 자주 발견하고 있었다. 바로 그 디나이얼 퀴어로 보이는 인물들이 작품 속에 등장한다. 주인공 장유안의 할머니가 오랜 친구를 사랑했음은 할머니의 일기장을 통해 뒤늦게 발견되었고, 장유안의 어머니와 관해서도 어머니가 친구 한주와 깊은 감정적 연대를 가지고 있다는 충분한 서술이 있었다. 언니 장재영은 유미연과 동거하며 유미연의 아이를 함께 키우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구도 그것을 사랑이라고 단정짓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디나이얼인가 싶은 생각으로 읽어나가다 의아해졌다. 디나이얼이란 무엇일까. 내가 누군가를 일컬어 디나이얼 퀴어라고 하는 것이, 그들이 스스로를 부정하고 있다는 올바른 지적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 디나이얼이란 자신에 대해 자각하고도 부정하는 상태라고 한다.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것. 그렇다면 자각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퀴어적인 것에서 눈을 돌려도?디나이얼에 대한 의문은 여전했다. 장유안과 그의 애인도 사랑에 대해 혼란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승원은 며칠째 연락이 없었다. 그래도 이상하지 않은 5년째 연애 중인 승원과 나였다. 군대 동기처럼 만난다는 농담이 더 이상 기분 나쁘지 않다.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연인이다. 승원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대뜸 집으로 오라고 했다. 문득, 그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51p)」에서 「연애가 지겨웠던 거였고 두려운 거였지 승원이 지겨운 건 아니었다. 나의 아름다운 시절들이 시간과 함께 소진해 버렸다는 아쉬움 때문에 새로운 사랑에 자신이 없다고 미리 겁먹었다. (중략)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 친구들과 헤어지기 위해 비겁하게 결혼 얘기를 꺼냈던 적이 있다. 승원에게도 여자 친구와 헤어지는 특별한 방법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240p)」까지. 함께여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이라는 듯 행동하던, 이럴 거면 왜 연애를 하는지 회의감을 갖고 있던 그들이다. 장유안이 무엇을 모른 체하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은가.

?사회적·암묵적으로 학습된 자기 부정, 이탈하지 않으려는 심리 등은 곧잘 혐오로 이어지지만 혐오를 내포한 부정으로도 이어진다. 사회는 아직까지도 개인이 스스로를 부정하여 다수와 결속될 것을 요구한다. 즉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각의 여부와도 관계 없이 다양한 디나이얼 상황에 강압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부모의 오랜 기대에 지기도 하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안고 싶다는 욕망이 시선과 검열에 지기도 한다. 인물들의 개연성 없어 보이는 행동이나 충동적인 말들은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거부 반응이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디나이얼 상태는 퀘스쳐닝과 유사한 일종의 출발 지점이라고. 괴리를 줄이는 과정은 개인이 자신의 온전함을 쫓는 과정이다. 거기에는 타인의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이전에 필자가 쓴 황정은 작 <파씨의 입문> 리뷰2)에서와 마찬가지로, ‘과연 타인을 쉽게 수식해버려도 괜찮은가’라는 말을 번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단어만 치환해도 된다. '모두가 디나이얼이면서 디나이얼이 아닌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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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현재 퀴어로서 소수 중에서도 소수로 정체화했다. 여기까지 이르는 중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정체성을 부정당한 적이 있다. 그 경험은 필자가 그때까지 한 번도 느끼지 않았던 격렬한 디나이얼 상태를 가져왔다. 정말 내가 나라고 믿어온 것이 아닌 다른 것이었는지에 대해 무한한 회의를 거쳤고 심지어는 그게 사실이라고 믿기까지 했다. 모든 것으로부터 해리되는 기분이었다. 떠올리면 종종 등골이 서늘하다. 네가 무엇이 아닐 것이라는 말에 그토록 흔들렸는데, 만일 다른 누군가는?내가 스스로를?부정하고 있다고 말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정과 외면이 강할수록 돌아가는 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모두 나의 선택일 뿐이다. 나를 정하는 일은 언제나 내가 해왔고 앞으로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어떤 방향으로든 타인의 괴리에 대해 또다른 타인은 이름을 수여할 수 없다. 내가 나를 부정해도 타인은 나를 부정할 수 없듯, 내가 나를 부정했다고 하기 전에는?타인이?'너는?부정했다'고 할 수 없다.

?필자가 뒤늦은 불안에?몸서리칠 때 하고 싶었던?질문을 장유안의 어머니는 딸들에게 던진다. 이 질문을 시작으로?우리는 출발 지점을 떠나게 된다.?인용으로 글을 마친다.

“딸들아. 다르다는 거, 그거 그냥 다른 거지 틀린 건 아니지?”

?재영이 엄마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방에 침묵이 고였다. 엄마가 다시 이불을 젖히고 재영과 나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잘못된 거 아니지? 나쁜 거…아니지?”

?나는 엄마에게 바짝 다가가 얼굴을 묻었다. 괜찮아, 엄마. 괜찮아. (2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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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track7of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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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Oxford Advanced Learner's English-Korean Dictionary

2)?http://rainbowbookmark.com/xe/review/5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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