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 북클럽 1기 6회차 : 이진 <언노운>
페이지 정보
작성자 무지개책갈피 댓글 0건 작성일 22-12-21 14:48본문
무지개책갈피 산하 독서모임, ‘무책 북클럽’.
7월에 시작된 무책 북클럽 1기 모임이 어느덧 마지막인 6회차에 이르렀습니다. 추운 바람이 부는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만나 이진 작가의 장편소설 <언노운>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아래는 1기 구성원분들이 작성하신 <언노운>의 리뷰입니다.
교육부는 지난 11월에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평등', '성소수자'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정체성 확립을 하는 시기에 성소수자가 구체적인 예시로 들어갔을 때 청소년들이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교육과정 안에서 성소수자를 적극적으로 베재하면 정말로 깨끗하게(?) 비성소수자 뿐인 사회가 될까?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자리가 없음을 깨닫고 더욱 깊은 고민과 절망에 휩싸일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언노운>의 우현은 정체성 때문에 익명의 공격을 받았을 때,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이것은주변 어른들이 우현에게 안전한 그의 자리를 충분히 마련해주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성정체성 혼란을 우려한 정부의 결정이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혼란을 겪는 건 어찌 보면 불가피한 과정이고, 혼란의 끝에서 마침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낸 청소년이 안전하게 제자리에 안착할 수 있게끔 기다리고 지원하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 아닌가. 한 가지 방향을 정해놓고 그외의 혼란을 차단하려는 것이 바로 폭력이다. / 파이퍼
자신의 가치와 존재 이유를 늘 스스로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때로는 소진되고, 때로는 흔들리면서 자신조차 자신의 온당함을 확신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우현도, 지예도, 영주도 그러한 시간들을 겪어내고 있다. 나 자신이 아니기에 나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순간에는 타인에게서 이해받기를 바라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있다는 것은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커다란 동력이 된다. 완벽한 이해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해해 보려고 애써서 들여다보는 다정한 노력은 많은 것들을 견뎌낼 수 있게 한다. 영주는 우현을 서로가 서로에게 영원히 미지의 존재일 수 있는 타인임을 받아들인다. 그런 채로도 연결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영주를 보면서 안도감이 들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서로를 놓아버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 소설의 끝 너머의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우현이 외톨이 펭귄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를 해보게 한다. 무리에서 떨어져 무리와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우현이 그 방향을 함께 바라봐 주는 또 다른 미지의 존재로 인해 더는 외톨이 펭귄이 되지 않기를. 그리고 또 다른 수많은 우현과 지예와 영주가 서로를 놓아버리지 않기를. 누구도 외톨이 펭귄이 되지 않는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된다. / 하다
젠더퀴어 논바이너리가 주인공인 청소년 소설은 처음 접했다. 한국 문학이 바라보는 퀴어 스펙트럼이 이만큼이나 넓어져 있는 줄 몰랐어서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젠더퀴어 청소년 분들과 책을 읽으며 고민하고 이야기 나눌 지점을 만들어준 책이라 뜻깊었다.
작품 속 인물들은 트위터를 기점으로 활동한다. 그들이 발 딛고 있는 온라인 세상은 학교 생활이나 가정보다 삶에서 중요하게 작동한다. 솔직한 자아 표출의 장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환경이 되기도 한다. 반면 그들이 처한 현실은 쉽지만은 않다. 인물들은 교차하는 여러 지점에서 서로 만나지 못하고 계속하여 엇갈린다. 나는 나를 알지만, 세상은 나를 알아주지 않는 갈등이 겹겹이 이어지며 책은 마무리된다. 알아주는 사람 없는 '나'는 어떤 존재일까? 가까이 있지만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는 '언노운(unknown)' 상황은 내게 너무 공포스러웠다. 우현과 지예 그리고 영주가 앞으로 화합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책은 그에대해 결론짓지 않았지만 나는 희망적인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다. 왜 항상 퀴어들은 겹겹의 고난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질까. 그리고 그것들을 왜 개인이 오롯이 짊어져야만 할까. / 아영
무지개책갈피라는 단체를 처음 알게 되고, 리뷰어로 활동했을 때를 떠올렸다. 입시의 압박을 느끼던 고등학교 3학년이었음에도 열심히, "청소년 퀴어 소설"을 읽고 감상을 올렸던 기억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당시에는 퀴어 청소년 당사자인 내가 읽기에 괜찮다고 생각될만한 작품이 딱히 없었다. 단순히 못 찾았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게 벌써 6~7년이나 지난 일이니 그 사이에 청소년 퀴어를 위한 소설이 발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어떤 현상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공감’하고,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 이진 작가의 장편소설 <언노운>은 그런 일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청소년이었을 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중학생 때부터 트위터리안이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서 소설 속 인물들에게 이입했다. 또한 청소년 뿐만 아니라 어른, 부모 세대의 이야기도 담겨 있어 마음이 움직였다. '그때' 보다 조금 더 시야를 넓혀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 지금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던가. 소설 속에서 우현과 지예가 겪은 일처럼, 어떤 청소년들은 자신의 보호자에게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을 겪는다. 나 또한 그랬고, 그래서인지 동생을 무척 걱정하며 지내왔다. (그 동생이 내년이면 성인이 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애를 걱정하고, 여전히 만일의 상황에 보호자가 되어줄 각오를 한다.) 퀴어라는 이유로 보호받지 못하고,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은 비극적이다. 문득 자신의 편견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고, 제때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도 슬픈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생때 같은" 자식에게.
사실, 무척 공감하고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있었다. 아무래도 현재의, 아직 정의내려지지 않은 상황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후반부에서 서사가 봉합되는 느낌이 다소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며 염려하던 외적 갈등이 등장했는데, 그저 '경고'처럼 지나간 점이 그랬다. 좀 더 서사의 완결성이 있다면 어땠을까. 그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안다. 얼렁뚱땅 끝나는 것보다는 열어두는 일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에도 동의한다. 그렇지만, 서사를 통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작가가 하는 일이니까. 독자로서 희망을 얘기해 본다. 아무튼, 다음과 같은 말 한 마디가 툭 튀어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참 감사한 소설이다. "아! 내가 청소년일 때 이런 책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 다홍
출근길괴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언노운』을 읽었다.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나는 마지막 모임에도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런저런 일로 조급해하던 중에 이번 책에서도 좋아하는 조각을 찾아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마도 모임에서 사람들의 눈을 보며 어느 부분이 왜 좋았고, 뒷 내용은 또 어떻게 되는지 물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반절이 조금 넘도록 읽은 이야기에서 가장 기대되었던 건 영주 씨의 에피소드였다. 생활용품점에서 매장직원으로 일하는 영주 씨의 세상을 지켜보고 멀리서나마 응원할 기회가 생겨서인가? 영주 씨와 수미 씨가 호프집에서 대화하는 장면에는 생활감과 지혜가 녹아 있는 대사가 정말 많다. 이야기 끝에서 두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까? 뜬금 없지만 요즈음 일터에서 연말 업무를 준비한다. 기한이 가까워오지만 나는 잘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선지 지하철 안에서 “초짜 시절 없는 사람이 세상에” 없다 말하는 수미 씨의 대사를 멋대로 곡해해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라 여기고 싶었다. 이야기 안에서 수미 씨를 만나 기뻤다. 내게 생경한, 또는 생경해진 집단과 사회에 절반 분량이나마 다가갈 수 있어 감사했다. / 해수
<언노운>의 화자는 세 명이다. 펭귄이 그려진 분홍색 후드티를 좋아하는 젠더퀴어 청소년 우현, 줏대 없이 남 얘기만 떠들기 좋아하는 '앵무새' 같은 사람들을 질려하는 전시애호가 청소년 지예, '경단녀' 시절에 종지부를 찍고 집 앞 천원숍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우현의 엄마 영주다. 세 사람이 맞닥뜨리는 문제들은 고유하면서도 보편적이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날 선 사이버 불링을 당하고, 좋아하는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불합리한 말을 들으며, 가장 안전하리라 믿었던 공간에서 성추행을 당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선 '진상'들의 말도 안 되는 언행에도 꾹 참아야 한다. 서로 다른 세 사람은 사실 한 가지를 바라고 있다. '나 자신'으로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 퀴어, 청소년, 여성, 비정규직 사원이라는 꼬리표 뒤에 있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소설은 종반부까지도 이들이 겪는 문제에 집중한다. 우현과 지예는 소중한 우정을 쌓았지만, 둘은 서로를 제외한 어느 곳에서도 안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현이 벌써 일 년 전에 커밍아웃을 했음에도 계속 '아들'이라 불러온 영주는, 소설의 가장 마지막 장에 이르렀을 때 우현을 따라 퀴퍼에 가보겠다고 다짐한다. 이 급작스런 속도를 의식한 듯 '나의 자식은 타인이며, 우리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채로도 어떻게든 연결되고 싶다고 생각한다."(220쪽)라는 문장이 나온다. 결국 <언노운>은 답하는 대신 묻는 소설,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고민을 펼쳐두는 소설이다. 앞으로의 세 사람이 지금보다 안전하고 더 '연결'되어 있길 희망해본다.?? / 보배
먼저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은 '그래서 주인공들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지?'에 대한 답을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현이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퀴어 퍼레이드로 뛰쳐나간 이후 영주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퀴어 퍼레이드에 갔을까? 가족이었던 둘은 끝내 좋은 가족 관계로 돌아갈 수 없었을까, 아니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주인공들 사이의 연관관계를 생각하며 소설을 읽다 보니 그들의 마음이 한 곳에 모이기를 바랐는데 그러지 않은 채로 소설이 끝났다는 점이 아쉽다. 그만큼 내가 이 소설에 몰입해서 읽었던 것도 같다. 학생 때부터 트위터를 오래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우현과 지예의 생각에 나타나서 나 혼자 이상한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고, 영주를 보면서는 내가 어릴 적 부모님께 막 대한 게 생각나서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빠르고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었다. / 일리구
******
6개월 동안의 북클럽 과정에 함께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참여 후기를 덧붙입니다.
무책북클럽은 내년에도 계속됩니다.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
원래 모임에 참여할 때면 의무감과 부담감이 약간 씩은 동반되곤 했는데, 무책 북클럽은 매달 기대하고 설레며 모임 날짜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다정한 분위기와 멋진 책들로 하반기 독서 생활이 풍요로워졌어요. 감사합니다! / 파이퍼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생각을 했다는 깊은 공감.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생각을 한다는 다채로움.
책은 매달 바뀌어도 함께 하는 사람들의 다정함은 바뀌지 않음. / 하다
나와 닮은 이야기를 읽고, 나와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나누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건 참 소중한 경험이다. 올해는 그 소중함을 무지개 책갈피에서 발견했다. 북클럽 활동을 하며 혼자였다면 잘 알지 못했을 퀴어 문학을 많이 소개받아 기뻤다. 안전하고 따뜻하게 문학과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매 시간이 앞으로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아영
6개월, 반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것도 생각보다 잦은 만남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부쩍 친근하고 따뜻하게 대화를 나누게 된 시점에 1기를 마무리하게 되어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 무책 북클럽이 아니었다면, 한 달에 한 권도 채 읽지 않는 게으른 독자로 남아있었겠죠.. 게으르다기보단, 여유가 없었지만요. 숨가쁜 일상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올해 대체 뭘 하고 살았지? 왜 벌써 연말이지?" 하고 침울해질 때, 북클럽에서 나누었던 온기를 떠올리고는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번 만남이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앞으로도 무책 북클럽으로 꾸준히 활동을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다음엔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이네요. 북클럽에서 공유한 리뷰가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될 때 유용할 것 같아요. 그럼, 앞으로도 좋은 책 읽으면서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퀴어독자 화이팅~ / 다홍
어떤 책을 읽건 단어 하나일지라도 좋아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었어요. 예상치 못했던 장면이나 관계를 사랑하게 되기도 했구요. 낯선 얼굴을 마주하면서 앞으로 얼마든지 이상해지거나 부족해져도 괜찮다는 믿음을 더 굳히게 되었습니다. 무지개 책갈피 북클럽에서 나누고 받았던 마음들이 오래 이어지기를 바라요. 감사합니다. / 해수
7월, 무책 북클럽 1기의 첫 번째 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시집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겪는 이야기는 온 지구를 휘감으며 창세기가 된다는 상상으로."* 정말 우리의 이야기가 온 지구를 휘감으며 창세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확신할 수 없지만 "상상"할 수는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함께' 상상하는 일이야말로, 무지개책갈피가 가장 잘 하고 또 즐거워하는 일일 것입니다.
같은 시에 이 문장도 있습니다. "모두에게 들리는 말은 우정이라고 읽자."* 우정은 어려운 일이며, 저는 어려운 일이야말로 가장 애쓸 가치가 있다는 릴케의 말을 마음 깊이 새겨두고 있습니다. 어색하게 첫 인사를 나누었던 무더운 여름부터 꽁꽁 언 손으로 작은 선물을 나누었던 추운 겨울까지, 참으로 어렵고 그래서 귀한 우정의 풍경을 함께 만들어주신 1기 참여자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함께 상상하는 우정의 여정 속에서 여러분의 일상이 조금이라도 덜 고단하셨기를 바랍니다. 저에게 그러했듯이요.
*한요나, 「혹등고래의 노래」, 『연한 블루의 해변』, 시용, 2022, 126쪽? / 보배
올 하반기에 읽은 책 절반은 학교 과제였고 절반은 무책 북클럽에서 읽은 책이다. 북클럽이 아니었다면 책을 읽지 않았겠지... 시간 내서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주고 또 좋은 공간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준 북클럽에 감사하다. 내년에도 또 만날 수 있기를! / 일리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