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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 북클럽 1기 2회차 : 한정현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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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지개책갈피 댓글 0건 작성일 22-08-1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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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는 어디에나 있다’는 말을 믿는 이들이라면 깊이 공감할 만한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여성, 성소수자, 어린이와 노인은 항상 혐오에 노출되어 있다.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거나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고 싶다는 욕망에 흔들리는 등 혐오의 섬세한 매커니즘을 겹겹이 보여준다. 

그러나 혐오의 중력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이야기의 다른 요소들조차 거대한 중력 안으로 휩쓸려버린다. 블랙홀 같다. 이 소설은 삶이라기보다, 이야기라기보다, 사연으로 느껴진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방식으로 다치고 죽는다. 다친 이들의 외로운 목소리와 죽은 이들에 대한 죄책감이 몰개성적으로 뭉쳐 혐오를 증명한다. 블랙홀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을까. 소설은 그 실마리를 ‘왓슨들’에게서 찾고 있다. 즉,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람들. 이 메시지를 희망으로 번역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 보배



책의 1/4 읽은 시점에 놀랍게도 나는 이런 메모를 적었다. '설영은 부끄러워하고 성찰하는 인간, 나서지는 못 한다'

또 다른 메모에 쓰인 것처럼 작가님은 혐오와 소수자에 대해 깊이 또 신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할 법한 고민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적어주신 것 같았다. 나는 <해리포터>를 박진감 있게 읽었던 초등학생 이후로 최근에 다시 재미있게 집중력 있게 책을 읽게 되었는데, 책장이 끝나는 시점에 '장편소설을 내가 완독했다'는 것과 다른 의미로 "벅차다"는 감정의 이름을 느꼈다. 그렇게 문장이 끝난 길 위에서 나는 설영과 연정을 통해 살아있는 사람들의 고달픔과 외로움을 떠올리며 울음을 삼켰고 '왓슨들'을 기억했다. / 헤집



대학교 입학했던 때에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래서인지 학부생들의 소설엔 혐오 범죄가 자주 등장했고, 일부 학생의 합평문에서 "현재 문학계에서 페미니즘이 '유행'이긴 하지만 대놓고 그런 사상을 독자에게 주입하듯 언급하는 건 '문학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만약 누군가 소설에 '그런데 메이 상, 여자 중에 분노 없는 사람은 없을걸요?' 라는 문장만 써놓아도 귀신 같이 그 문장을 콕 집어 페미니즘을 '주입'한다고 언급하고, 퀴어 인물이 등장하면 '동성애 소재의 소설을 쓰셨는데' 라는 말로 합평을 시작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과학소설에서 우주인이 나오는 것처럼, 추리소설에서 잔인한 범죄 수법이 나오는 것처럼,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기 위해 소설에서 무엇이든 등장시킬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한정현 분께서 SF 작가가 미래도시를 그리듯 이 세계를 그려냈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을 구성하기 위해 퀴어의 존재들을 가져온 게 아니라, (적어도 글을 쓰는 동안은) 설영이 살고 있는 세계가 실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쓰여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주인도 소설에 대놓고 나오는 마당에 실존하는 퀴어들이 소설에 대놓고 나오지 못할 이유는 없다. / 파이퍼



혐오와 괴로움. 그 다음의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건지는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의 가치를 생각하며 완독까지 찬찬히 나아갔다. 소설에 나타난 인물들이 지닌 소수자성과 사회에서 겪는 차별의 고통은 너무나 현실적이기 때문에 더 참담하게 느껴진다. 작은 강아지들이 모여 호랑이를 물리친다는 이야기. 이 소설은 강아지들을 위한 소설인가? 작가의 고민과 나름의 메시지가 잘 와 닿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읽고 나면 왠지 모르게 씁쓸해진다. 그런 말이 생각난다. "정작 상담이 필요한 사람보다는 그 사람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이 상담 받으러 온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 개인적으로, 혐오를 잠재우는 힘은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이를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나와 비슷하게 밥을 먹고 필사적으로 생존해내는 삶으로 상상해내는 사람은 섬세하고 강한 사람이다. 그 상상력의 원동력은 애정이 아닐까. 결국, 사랑이 혐오를 이긴다. 이 소설은 "우리의 일"을 말한다. 강아지들에게 힘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연대하는 삶의 계보를 그려낸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여서 읽을 가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 다홍



내가 읽은 부분까지의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는 여성과 남성, 가해와 피해 등의 이분법적 구도로서 갈등이 재현되었다. 때문에 종내에는 서술자가 이분법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더욱 복잡한 맥락을 다루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만들었고, 이러한 흐름이 어떻게 바뀌어갈지 궁금해졌다.

또한 여러 역사적 맥락이 인용되어 이야기 안에서 사료와 픽션이 구분되지 않고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 둘의 경계를 어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자의 고통에 관해 이야기할 때 진실과 진실이 아닌 부분을 판단하는 일은 사실 중요치 않다. 그러나 작품 내에서 몇 개의 폭력이 검열 없이 드러나므로 읽는 이로서 이야기 전체를 가깝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거리감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것 같다. 더불어 중심인물인 '설영'이 창작자여서 글을 쓸 때의 나와 쓰지 않을 때의 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설영이라는 사람이 느끼는 부끄러운 순간과 어떤 1인칭적 무지에서 나아가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접하고 싶고, 읽는 사람으로서도 더 나아가고도 싶다. / 해수


?20대 초반인 나에게 가장 와 닿았던 건 페미니스트이자 레즈비언이었던 도영의 이야기였다. 성소수자에게, 특히 언제부턴가는 페미니스트인 퀴어에게 더한 폭력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학교 내부에서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이 금기시 되고, 페미니스트인 레즈비언은 여성주의의 연장으로 동성애를 수행하는 것으로 인식 되기도 했다. 혐오와 폭력의 결과로 중학생인 도영은 살해당한다.

그러나 소설은 도영이 살해당한 설정에서 멈추지 않는다. 도영의 어머니인 연정이 성소수자에 대해, 그리고 가족 구성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일본 내 퀴어의 삶, 한국 청소년으로서의 퀴어의 삶, 인터섹스의 삶, 국가폭력 생존자(빨치산) 퀴어의 삶……. 빨치산 등 잘 모르는 소재가 많이 등장해 읽기 어려웠지만, 그만큼 내가 알아야 하는 게 많음을 자각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 일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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