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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 프라이드를 이어가며, 퀴어문학 신간 8종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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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배 댓글 0건 작성일 21-06-3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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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여름입니다. 퀴어문학 신간이 쏟아지고 있어요.

여러분의 일상은 여전히 바쁘고 고되시겠죠. 굳이 다 챙겨 읽지 않으셔도 되게끔 대신 읽어봤습니다. 우선 여덟 편만 소개할게요.

바로 시작합니다. 


*순서는 랜덤입니다. 

*주관 주의, 짧음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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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혜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

문학동네, 2021


지구가 잿빛으로 변한 이후 달 기지에 홀로 남은 소녀가 읽히지 않을 편지-일기-'창세기'를 쓰는 이야기, 전삼혜 작가의 단편 「창세기」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는 「창세기」의 심화확장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편 분량이어도 찡했는데 장편이 되니 역시 더 그렇네요. 


거주지가 우주까지 확장된 근미래, '제네시스'라는 대형 집단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SF 소설이지만 재난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범접할 수 없는 외력이 일으키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그 외력에 집중하면 놓치기 쉬운 내부의 작고 소중한 것들을 바라보는 재난 소설 말이죠. 첨언할수록 빛이 바래는 이야기인 만큼, 직접 읽어보시라고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저처럼 작은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희생을 보여준 몇몇 인물들에게 경탄을 보내고 싶습니다. 이들을 오래 기억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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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운 『올해의 선택』

문학과지성사, 2021


소설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지금을 견딜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주는 소설집 같습니다. 무겁지 않고, 어렵지 않고, 젠체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외람된 말씀이지만 '뼈레즈 감성'이 담뿍 묻어나 있습니다. 외람됐다는 말은 농담이고 후자는 진심이에요. 게다가 칭찬이죠. 제 감수성의 역치(매우 낮은 편입니다)를 미묘하게 넘기도 하지만, 많은 독자들이 즐겁게 읽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퀴어 친구들과 책 수다 떨기에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공감하며 읽은 책은 또 오랜만이네요.


“당신의 국민 속에, 성소수자는 없는 겁니까?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여성이며 성소수자인 나는 그럼 여성이며 성소수자인 채로 안전하고 평화롭게 사는 당신의 국민이 될 수 없다는 겁니까?”

민주는 큰 소리로 외쳤다. 울먹였다. 울고 있었다. 경찰이 달려들었다. 민주는 그대로 붙잡혔다. - 「운동은 몸에 좋아요」


그나저나 「사라왓부인모임」은 하필 코로나19 시대에 태국드라마 <2gether>(넷플릭스 <보이프렌즈>)를 덕질하던 저를 위해 쓰신 소설이 맞죠, 작가님? 아니어도 저는 그렇게 먹겠습니다. 덕분에 코로나 블루를 조금 이겨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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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라 리 『난 그저 미치도록 내가 좋을 뿐』

베르단디, 2021(2020)


장단점이 명확한 소설이었습니다. 장점은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what)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큰 몸을 가진, 케이팝과 춤과 노래를 사랑하는 바이섹슈얼 소녀가 비만인 혐오와 퀴어 혐오에 맞서 자신의 꿈을 좇는 이야기. 정말 멋지지 않나요. 그러나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how)에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혐오 발언을 일삼는 이들은 날선 공격을 퍼붓는 단순한 악인일 뿐이고, 그걸 헤쳐 나가는 주인공의 프라이드 역시 직선적이고 얄팍하게 느껴집니다. 때로 교설적으로 느껴질 정도지요. 


어떤 몸이든 어떤 정체성이든 사람은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는 메시지는 중요합니다.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요하죠. 이 인물들이 어떻게 혐오 발언을 무신경하게 내뱉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주인공은 어떻게 자기 몸을 사랑하게 되었고 어떻게 프라이드를 얻게 되는지를 좀 더 자세하게 보고 싶었어요. 물론, 케이팝을 사랑하고 큰 몸을 가진 퀴어 독자로서 즐겁게 읽기는 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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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홀링허스트 『수영장 도서관』

창비, 2021(1988)


『아름다움의 선』을 읽었을 때에도 느꼈지만, 홀링허스트의 작품은 성적 묘사와 폭력적인 장면에 면역력이 없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긴 어렵습니다. 선명한 주제를 향해 곧장 걸어가지 않고 여기저기 배회하는 과정을 중시하기 때문에, 객관식 같은 독서를 선호하는 분들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분명 매력이 있습니다.


장편 소설을 좋아하는데요. 복잡한 문제(모든 문제는 복잡합니다)를 쉬이 해결하려 들지 않고 최대한 유보하고 가능한 한 망설이는 성실함과 끈질김 때문입니다. 그 유보와 망설임 중간 중간, 이 작가는 지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어떤 소설은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 질질 울면서 신음하게 하죠. 『수영장 도서관』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상류층 백인 남성의 성장'에 대한 소설에 전반적으로 차가운 편이라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홀링허스트의 소설은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대신 작가가 영리하게 남겨둔 힌트를 주워 연결하게 하는데, 충분히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살아온 화자가 무지를 깨고 타인과의 연결을 인식하게 되는 이야기는 늘 매력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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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트루드 스타인 『세 명의 삶 \ Q. E. D.』

큐큐, 2021(1903-1909)


세 여성의 삶을 다룬 연작소설 <세 명의 삶>과 단편 「Q. E. D.」을 묶은 책입니다. 독특하다고 느끼실 겁니다. 이래도 되나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포인트입니다. 

혹시 여건이 된다면 스타인의 시를 찾아본 후에 읽어보세요. 한국에 스타인의 시가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는 이유는 거의 번역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단어를 무한히(는 아니지만 그렇게 느껴집니다) 반복하면서 언어에 달라붙은 통념을 깨부수고 전복하려는 시. 그런데 소설도 이렇게 쓰실 줄이야, 웃으며 읽었네요.


잘 읽히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술술 넘어가요. 20세기 초 퀴어/여성들의 삶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인물들의 선택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더라도 이들의 고충과 역경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죠. 특히 '한 사람의 내면에는 너무나 많은 모습이 있어서 어느 것이 진짜인지 모르겠다'는 고민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단 하나의 진실만을 신봉할 수 없는, 자꾸 헤매고 부딪치게 되는 여성들의 삶. 실제로 꽤나 드라마틱한 내용이니 오히려 차분한 여름밤에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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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해거홀트 『괜찮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자음과모음, 2021(2020)


세상에는 좋은 퀴어문학의 수가 참 적은데, 그중에서도 좋은 트랜스 소설은 정말 적습니다. 추천을 부탁받을 때마다 한참 고민해야 해요. 그래서 이 책이 반가웠습니다. 기본에 충실한, 군더더기 없는 좋은 책이거든요.


요는 제목과 동일합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부제는 좀… 그래요. '어느 날 아빠가 원피스를 입는다 해도.' 그러니까 이 소설의 화자는 '아빠' 대니엘이 트랜스 여성이라는 사실에 '무슨 일이든 일어날 거라'고 두려워하는 여성 청소년입니다. 사실 가족의 커밍아웃을 다룬 소설은 차고 넘치는데요, 대개 가족 내부의 '혼란'에서 시작하여 '수용/인정'으로 봉합하는 뻔한 흐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외부에 집중합니다. 즉, 대니엘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혼란스러울 이유는 없고, 대니엘에 대한 사회적인 혐오가 문제라는 거죠. 


이 당연한 사실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책이 이제야 하나 둘 늘어간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특히 이 책의 경우 엄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대니엘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파트너로 나와서 좋았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이 일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결말이어서 좋았어요. 장점이 많고 단점은 잘 보이지 않는 YA 트랜스 소설로 추천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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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시 예드로프스키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푸른숲, 2021(2020)


두 청년은 호수를 사랑했습니다. 가장 안전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일 수 있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반면 도시는 잔혹합니다. 호수 바깥의 청년은 세상의 위협에 맞서 생존해야 합니다. 

젠더/섹슈얼리티를 '사적인 고민'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몸, 감정, 관계가 공적 영역과 끊임없이 협의하고 투쟁하는 문제임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차별금지법조차 미완의 상태인 대한민국은 소수자에 대한 법적 보호와 파트너십 제도가 정착된 나라와 다르고, 이 소설에서처럼 계엄령이 선포된 80년대 폴란드의 공산주의 사회와 또 비슷한 듯 다를 것입니다. 소설을 통해 이 사회에 대한 무지를 걷어가다 보면 제목을 얼마간 이해하게 됩니다. 그곳은 "너무 비좁아서 팔꿈치에마저 멍이 드는 일방통행의 터널"입니다.(225쪽) 이들은 어둠 속에서 헤엄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퀴어 관계에 달라붙는 사적인 고민과 공적인 위협을 양 손에 쥐고 힘껏 물질하는 소설입니다. 종종 아름다운 문장이 급류처럼 쏟아집니다. 이런 소설과 함께라면 어둠 속에서 헤엄치는 경험도 즐기는 편이지만, 저는 어디에서든 희망과 용기의 빛을 찾으려 애쓰는 어리석은 독자여서요. 마지막으로 이 문장을 덧붙입니다. 


"지옥도 같은 참상이 펼쳐지더라도, 그 참상을 기록하고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저기 있는 한 희망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작디작은 불티에도 불은 붙는 법이니까."(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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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 노부코 『물망초』

을유문화사, 2021(1932)


S소설을 아시나요? 

여자아이들 사이의 친밀하고 미묘한 유대관계를 다룬 작품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백합물'로 소비되기도 하죠. 『물망초』 또한 이 부류에 속합니다. 1932년도 작품으로, 개성 강한 세 여성 사이의 두근두근 롤러코스터 같은 관계를 그려냈습니다. 이 여학교 학생들은 세 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 있대요. 예술을 사랑하는 온건파, 공부에 매진하는 강경파, 그리고 중립이 있죠. 온건파 여왕님인 요코가 어느날 중립파 마키코에게 흥미가 동해서 적극적으로 다가갑니다. 마키코는 우연히 강경파 공부벌레 가즈에와 가까워지는데 한편으론 요코의 치명적인 매력에 끌리기도 합니다. 두근두근 롤러코스터, 맞죠?


작가 요시야 노부코에 대한 관심을 더해준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는 성인이 된 후로 숏컷에 도시적인 스타일을 유지하고,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에 대한 소설만을 쓰며, 가부장적인 집안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동성의 반려자와 함께 주체적으로 살아갔대요. 국내에는 90년대에 출간된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는) 두 권만 있었네요. 특히 『물망초』는 국내 초역이라고 합니다. 20세기 초 여성 소설의 매력을, 일본 S소설의 재미를 느껴보세요. 덕분에 저는 요시야 노부코 소설을 죄다 읽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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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입니다. 이 글을 끝까지 다 읽으신 분… 뭐라도 되실 분… 대단하신 분. 부디 이 중에 하나라도 여러분의 마음에 안착하는 예쁜 작품이 되면 좋겠습니다.

6월만 프라이드 먼쓰일 필요가 있나요. 계속, 쭉, 일 년 내내. Happy Pride 하세요 :)




보배

퀴어문학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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