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먹어보지 못했지만 조만간 > 전지적 퀴어시점

사이트 내 전체검색

전지적 퀴어시점

아직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먹어보지 못했지만 조만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신난 댓글 0건 작성일 19-04-14 18:22

본문

8ea31c8e2407bf4bfe5fd873b7265fc1_1555231840_843.png   8ea31c8e2407bf4bfe5fd873b7265fc1_1555231840_6759.png

패니 플래그 저, 김후자 역,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Fried Green Tomatoes at the Whistle Stop Cafe』(1987), 민음사, 2014(2011), 478쪽.



■ 두서없고 초라한 에세이적 서론: 귀여운 것과 읽은 것과 본 것


   여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먼저 태어났다. 다른 사람은 절대로 그 시간 속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 과거를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은 종종 무력과 회의를 느끼게 한다. 나는 나의 탄생을 막을 수 없다. 모든 불행의 시작을 그만두게 할 방법이 없다.
   나는 종종 벌떼처럼 웅성거리는 과거의 소음들에 시달린다. 그렇게 시달릴 때면, 내 얼굴이 벽과 벽 사이에 끼인 것 같다. 소음들은 나를 조각내거나, 나와 주변을 격리시킨다. 마치 한 문단 안에 엄청나게 많은 괄호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또는 ‘나는’이라는 주어가 반복되는 것처럼.

   리뷰의 대상 선정은 너무도 개인적인 이유로 이루어졌다. 내 친구 중 하나는 엄청난 종이 호더이다(그리고 아마 그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리고 너무 귀엽다…. 그냥 종이다람쥐라고 부르겠다. 종이다람쥐는 잡다한 종이 뭉치를 선물하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한편으로는 그를 종이빌런이라고 부르고 싶기도 하다). 나는 몇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그 중에 현실문화에서 나온 이전 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선언집 『페미니즘 선언 ? 레드스타킹부터 남성거세결사단까지, 드센 년들의 목소리』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Fried Green Tomatoes at the Whistle Stop Cafe』만 끝까지 다 읽었다…. 영화도 보고…. 귀여운 것과 다 읽은 것 다 본 것을 생각하기 위해서 이 두 권의 책을 사용할 것이다.
   두 권의 책과 한 편의 영화가 내게 남긴 것은 아름다운 것… 나는 이제 소음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에 부풀 수 있다(아직까지 그것이 실현된 적은 없다). 적어도 누군가 아름다운 마음으로 준 물건이 내 곁에 존재한다는 것, 내가 그것을 만질 수 있다는 것, 만지고 나면 그 많은 소리들 중에 한 목소리가 “괜찮아” 하고 말해준다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때때로, 쓸모없이 나의 과거들을, 나의 어머니들의 과거들을 상상하고, 절망한다.
   과거에 무엇들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특히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일어난 일들이 어떻게 나를 구성하였는지 알고 싶었다. 단서 같은 것이 나오면 나는 속이 뒤틀리는 기분을 느낀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되어버린 것들. 그 기분은 나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기도 하다. 대부분 괜찮다.



■ 선언들이 있었다

  

   1969년 미국에서는 한 사건이 일어난다. 다양한 ‘의식화’ 모임에 참석하던 캐롤 해니시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라고 선언한 것이다. 캐롤은 ‘여성’1)으로서 겪게 되는 개인적 경험들에 대해 다른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연결점을 찾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해결책을 발견할 수 없는 문제, 진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또한 “모임은 내가 말해야 한다고 늘 들어왔던 것 대신 내 삶에서 내가 정말로 믿는 것을 말하는 정치적 행동이었다”2)고 말한다.
   패니 플래그(Fannie Flagg, 본명 패트리샤 닐Patricia Neal)의 소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원작으로 하여, 패니 플래그가 각색한 존 애브넷(Jon Avnet) 감독의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Fried Green Tomatoes>는 당시 미국 사회 여성들의 개인적인 모습을 현상해내고 있다. 그 개인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정치적 선언이 되어 시대와 국경을 넘어 현대 한국 여성인 나에게 전송되었다.
   본고에서는 원작 소설과 영화에서 재현된 ‘에블린 카우치(이하 에블린)’와 ‘니니 스레드굿(이하 니니)’과의 연대, ‘십시’가 행하는 차별에 대한 대항, ‘잇지 스레드굿(이하 잇지)’과 ‘루스 제이미슨(이하 루스)’ 간 레즈비언 관계를 분석해볼 것이다.



■ 물결들


   물결 담론wave discourse에 의해 미국의 페미니즘 개념을 분류한다면, 소설이 출판되고 영화가 개봉한 시간은 각각 1987년과 1991년으로, 제2물결 페미니즘의 시대 안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2물결 페미니즘의 시대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표제 아래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시대로, 여성 참정권을 위해 투쟁했던 1848년부터 1920년대까지의 제1물결 페미니즘과는 달리 여성의 평등권을 확대하기 위해 교육적 · 경제적 · 정치적으로 투쟁했던 시대이다. 또한 1960년대부터 1980년대는 하이픈 페미니즘hyphen-feminism의 시기로, 자유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급진적 · 문화적 페미니즘 등의 다양한 노선을 가진 페미니즘 운동 진영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서로 연대하며 사회적 문제와 맞서던 시기였다.3) 앞서 서론에서 말했던 캐롤 해니시의 선언문은 당시의 미국 사회 내에서 일어났던 페미니즘 운동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캐롤은 선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모임에서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개인적인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해결책이란 없었다. 집단적 해결을 위한 집단행동만이 있었다. …(중략)… 내가 참여했던 모임들은 ‘대안적 삶의 방식’이나 ‘해방된’ 여성이 의미하는 삶 속으로 빠져들지 않았다. …(중략)… 독신생활을 하든 레즈비언이든, 혹은 다른 어떤 조합이든 각각의 나쁜 상황에서 생겨나는 좋고 나쁜 점이 있다. ‘좀 더 해방된’ 방식이란 없다. 단지 나쁜 대안들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분명하게 말하기 시작한 가장 중요한 견해 가운데 ‘친여성주의(the pro-woman line)’라 부르는 것이 있다.4)


   선언문에서 말하는 ‘친여성주의’의 주요 내용은,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을 것, 생존하기 위해 여성이 선택한 생존법을 이해할 것, 혼자 싸우지 않고 단결해서 싸울 것’5)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2물결 페미니즘이 진행되면서 그 모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모순점들을 지적하면서 뉴욕을 중심으로 ‘전국 흑인 페미니스트 연합National Black Feminist Organization’과 ‘래디컬 레즈비언Radicalesbians’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여성들의 집단 또한 생겨나게 된다.


   흑인 페미니스트의 존재는 분명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된 제2물결 여성운동과의 접점에서 나왔다. 흑인 여성, 제3세계 여성, 노동자 여성은 여성운동이 시작됐을 때부터 함께했다. 하지만 운동 바깥에서의 반발이, 인종 차별이, 운동 안에서의 엘리트주의가 우리의 참여를 가렸다. 1973년, 주로 뉴욕에 거주하던 흑인 페미니스트들은 독립된 흑인 페미니스트 집단을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전국 흑인 페미니스트 연합(National Black Feminist Organization, NBFO)이다.6)


   여성해방운동을 하는 여성들은 대개 레즈비어니즘 문제를 마주하거나 다루기를 피하려 든다. 그것이 불편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대적으로 굴거나 회피하면서 그것을 더 ‘넓은 주제’에 넣기 위해 애쓴다. 심지어 언급조차 않는다. 만약 그것에 대해 말해야만 한다면, ‘주의를 돌리는 라벤더(lavender herring)’*라 부르며 무시해버리려 한다. …(중략)… 더 젊고 더 급진적인 몇몇 여성들이 레즈비어니즘을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했다지만 기껏해야 남성을 대신할 성적 ‘대안’으로서 이야기할 뿐이다. 그렇지만 이는 여전히 남성에게 우월성을 쥐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여성과의 관계는 남성에 대한 부정일 뿐이며, 레즈비언 관계는 단순히 성관계로 환원된다. …(중략)… 여성해방을 위해서는 이성애-억압자와 우리를 일대일 관계에 묶어두는-라는 근본적인 구조를 직면해야만 한다. …(중략)… 이제 이 모든 강압적인 동일시는 끝났다. 우리는 최대한의 자유를 얻어낼 것이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마음껏 말할 수 있도록.7)


   * ‘관심을 딴 데로 돌리는 것(red herring)’에서 색깔만 바꾼 표현이다. 애초에 레드 해링은 사냥개를 훈련시킬 때 붉은 색을 띠는 훈제 청어를 이용한 데서 유래한 표현으로, 라벤더색은 게이나 레즈비언을 상징한다.


   이후 콜린스와 니라 유발-데이비스의 ‘횡단의 정치trans/versal politics’, 아이리스 영의 ‘연속성으로서의 성gender as seriality’, 가야트리 스피박의 ‘전략적 본질주의strategic essentialism’ 등의 이론들이 등장하며 상호교차성intersecionalism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다.8) 문학 안에서는 “전통적으로 흑인 여성 소설가들[그리고 흑인 여성 시인이나 여성 극작가들]은 일종의 수정주의자를 자임하면서 흑인 여성에 관한 고정관념을 현실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9) 소설이 창작되기도 한다.
   영화 안에서 다양한 여성들이 인종차별주의, 남성중심주의, 이성애중심주의에 대항하여 서로 연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보이스 오버: 친여성주의적 주제


   시모어 채트먼은 저서 『영화와 소설의 서사구조 - 이야기와 담화Story and Discourse: Narrative structure in Fiction and Film』에서 제라르 쥬네트가 제시한 서사 구조물 안에서의 시간에 대한 세 가지 관계 범주 ‘순서ordre’, ‘지속dur?e’, ‘빈도fr?quence’와 그 안의 개념들을 말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그 중 ‘순서’의 개념을 통해 작품 안에서 시간이 표현되는 모습을 살펴볼 것이다.

   소설은 앨라배마 주(州) 휘슬스톱 마을에 거주했던 스레드굿 가(家) 사람들, 휘슬스톱 마을로 이주한 루스,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스모키’, 휘슬스톱의 주간지를 제작하는 기자 ‘닷 웜스’ 등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들과 그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로 인해 수많은 이야기-축들을 가지게 된다. 이 이야기-축들은 휘슬 스톱의 주간 소식지 ‘《윔스 통신》’이라는 매체, ‘앨라배마 주 버밍햄 올드몽고메리 하이웨이’의 ‘로즈 테라스 요양원’에 오티스 부인을 돕기 위하여 머물고 있는 니니와 에블린의 담화, 또는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 의한 서술 등에 의해서 내포독자에게 전달되고 있다.

   영화는 소설 속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인물들과 이야기-축들을 압축하고 생략하여 제시한다.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영화의 중요한 이야기-축은 두 가지로, 첫 번째는 1920년대부터 시작된 잇지와 루스의 동성애 관계에 대한 이야기-축이고, 두 번째는 1980년대부터 시작된 니니와 에블린의 휘슬스톱 이야기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축이다.
   첫 번째 이야기-축은 두 번째 이야기-축 안에서 동종제시homeodiegetic된다. 첫 번째 이야기-축은 니니의 말과 영화의 플래시백flashback 기법을 통해 상기rappels 또는 반복적인 것r?p?tives되고 있다. 이는 첫 번째 이야기-축이 두 번째 이야기-축 내에서 보충적인 것compl?tives 또는 삽입renvois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화는 1930년 실종 신고된 루스의 남편 ‘후랭크 베넷(이하 후랭크)’의 차가 진흙탕에서 끌려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b9d6baaca9c158728c35d55c6b33c45d_1555232930_8503.png 

[그림1] 인양되는 자동차


   이러한 현재와 과거의 연쇄는 이후 니니라는 여성 발화자의 목소리를 통한 해설voice-over로 인해서, 작품 내부에서는 애벌린이라는 여성 청자와 작품 외부에서는 관객의 귀에 전달되는 방식으로 인해서 중첩적으로 소급제시된다.

 

b9d6baaca9c158728c35d55c6b33c45d_1555232978_8879.png   b9d6baaca9c158728c35d55c6b33c45d_1555232979_2401.png
[그림2,3] 강에서 차를 끌어낸 것은 어느 여름날 이었지

 

b9d6baaca9c158728c35d55c6b33c45d_1555233099_6763.png   b9d6baaca9c158728c35d55c6b33c45d_1555233100_1209.png
[그림4,5] 그날부터 비가 퍼부어 몇 년 전에 사라졌던 후랭크의 트럭이 나타났지


   영화 중반, 잇지가 프랭크의 집에 갇혀 살아가던 루스를 집 안에서 빼내는 장면에서 보이스-오버는 반복된다. 니니가 과거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과거 장면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사용된 것과는 반대로, 영화의 장면은 에블린의 목소리와 함께 과거 장면에서 그보다 미래의 장면으로 넘어온다.

  

b9d6baaca9c158728c35d55c6b33c45d_1555233146_464.png   b9d6baaca9c158728c35d55c6b33c45d_1555233146_8149.png   b9d6baaca9c158728c35d55c6b33c45d_1555233147_1004.png
[그림 6,7,8] 난 아마존의 여장사 ‘도완다’다! / Wife kills husband and sells his body parts to …


   이 서술 구조와 서술 기법은 극의 결말 부분에 나타나는 에블린이 니니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려고 하는 모습과 유기적으로 구성된다. ‘의식화’ 모임에서와 같이, 이전 여성the pro-woman의 이전 여성들에 대한 발화가 그보다 미래의 여성에게 전달된 것, 그 전달된 발화가 미래 여성의 내면에 자리 잡은 것, 이전 여성과 미래 여성이 서로 연대하는 모습이 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서술 구조는 영화 속 여성들의 담화 모습과 이어지며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 식인 하는 백인: 식인 하는 흑인 신화를 전복하기

   

   후랭크라는 인물을 이루고 있는 의소를 압축하여 제시하면 ‘남성’, ‘백인’, ‘가정폭력범’, ‘KKK(Ku Klux Klan) 단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후랭크는 이와 같은 의소들을 통해 영화 안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의 기표로 작용된다. 영화는 흑인 노인 여성이라는, 권력에서 밀려난 타자의 기표인 십시를 통해 이러한 권력자를 처단하고 있다.
   영화와 소설 모두 후랭크의 살인범이 십시임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소설에서는 ‘빅 조지’가 잇지를 살인범으로 몰고 있는 ‘그래디와 조지아에서 온 두 형사들’에게 후랭크를 요리해 대접하며 “비결은 소스에 있습지요.”10)라 말한다. 영화에서는 십시가 바비큐를 먹으러 온 흑인을 내보내는 장면이 추가된다. 또한 빅 조지 대신 십시가 조지아에서 온 보안관 ‘커티스 스무티(이하 커티스)’에게 후랭크 요리를 대접하며 “비밀은 소스에 있습죠.”라고 말하게 한다.

  

b9d6baaca9c158728c35d55c6b33c45d_1555233245_751.png   b9d6baaca9c158728c35d55c6b33c45d_1555233246_0726.png   b9d6baaca9c158728c35d55c6b33c45d_1555233246_4247.png
[그림9,10,11] 오늘은 안 돼요 / 비밀은 소스에 있습죠


   프란츠 파농은 그의 저서 『검은 피부, 하얀 가면Peau Noire, Masques Blancs』(1954)에서 흑인이 아닌 이들이 흑인의 역사에 대해 말할 때 ‘식인풍습’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이 만들어낸 신화, 흑인은 악을 상징한다는 것을 공고히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신하여 만든 나의 역사, 그 첫 장을 보면, 식인행위의 토대가 아주 자랑스러운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여 나는 이를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은 나의 염색체 안에 식인행위를 대변하는 다양한 두께를 가진 특정한 종류의 유전자를 기입했다. 이를 성적인 것은 물론이고 인종적인 것과도 연관시켰다. 참으로 부끄럽고 치졸한 과학이 아닐 수 없다.11)


   영화는 흑인이 흑인을 서로 잡아먹는 장면을 전복시키고 백인이 백인의 고기를 먹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뿌리 깊은 인종차별적 신화에 대항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 신화에 대항하는 것은 인종과 젠더에 의해 차별 받는 타자인 십시에 의해 이루어짐으로 그 대항의 파장이 강화되고 있다.



■ 벌꿀 부치: 잇지의 젠더 횡단하기


   영화와 소설에서 잇지는 ‘남자아이처럼 입고 다니는 여자 아이’, 즉 ‘톰보이’로 묘사된다.


   늘 오버올을 입고 맨발로 다녔던 것 같아요. …(중략)… 나무 타기를 좋아하고, 버디나 다른 남자 형제들하고 사냥을 다니거나 낚시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버디는 이지가 사내아이들 못지않게 총을 잘 쏜다고 했어요. 작고 예쁜 아이였죠. 버디가 머리를 짧게 잘라 버렸을 때만 빼고요. 그때 이지를 봤더라면 틀림없이 사내아이인 줄 알았을 거예요.12)

 

b9d6baaca9c158728c35d55c6b33c45d_1555233408_5528.png   b9d6baaca9c158728c35d55c6b33c45d_1555233408_9415.png
[그림12,13]


   한편에서는 잇지가 ‘남성’의 의복을 하고, ‘남성’의 행동을 하는 것이 동성애자의 성 역할의 재현에 있어 이성애자 중심의 고정관념을 탈피하지 못했다고 비평할 수 있다. 또 잇시와 루스의 육체적 성관계 묘사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작품이 동성애와 이성애가 별다른 차이가 없음을 증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13)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1990) 등의 저서에서 젠더는 수행성performativity을 가지며, 이성을 ‘패러디’하는 드래그drag, 부치/팸butch/femme 등의 존재들은 ‘원본 없는 패러디’라 하였다. 즉 그들은 허구적으로 구성된 이분법적 젠더를 폭로하고 있다고(폭로한다고 읽힐 수 있다고) 말한다.


   원본적이거나 기원적인 젠더 정체성에 대한 관념은 때로 드래그, 옷 바꿔 입기, 그리고 부치/팸의 정체성에 대한 성적 양식화라는 문화적 실천 속에서 패러디된다. 페미니즘 이론에서 이런 패러디적 정체성은 드래그나 옷 바꿔 입기의 경우 여성 비하적인 것으로, 특히 부치/팸의 레즈비언 정체성의 경우 이성애 실천에서 나온 성 역할의 고정관념을 무비판적으로 전유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중략)… 만일 연기자의 해부학적 구조가 이미 연기자의 젠더와 다른 것이라면, 이 연기의 수행은 섹스와 연기 간의 불일치를 암시할 뿐 아니라 섹스와 젠더, 그리고 젠더와 그 연기 간의 불일치까지도 암시한다. 드래그가 ‘여성’에 대한 하나의 통일된 그림을 창조해내는 만큼(비판자들은 종종 반대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또한 이성애적 일관성이라는 규제적 허구를 통해 통일체인 양 거짓되게 당연시된 이런 분명한 양상의 젠더 경험을 폭로한다.14)


   영화는 잇지의 몸 위에 남성을 상징하는 기표들 ? 오버올, 각띠, 와이셔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벌들이 윙윙대는 가운데에서 보호 장구를 갖추지 않고 꿀을 따오는 용기 등 ? 을 겹쳐 놓음으로 인해서 이분법적 성별을 횡단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이 시도를 통해, 소외된 타자는 영화 속 주체로 호명된다.

   또한 우리가 우리의 사랑이 남들과 같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는가? 모든 사랑은 같은 모습을 띄어야 하는가? 그것은 누구를 위한 증명이고 규범인가? 동성애자들이 재현되기 위해서는 유성애 장면을 삽입하여 이성애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성애적, 유성애적 기표들을 내면화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에 퀴어의 재현방식의 돌파구를 찾는 데 있어 근본적인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타자들을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으로 불러 세움에도,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흑인 십시와 ‘빅 조지’, 빅 조지의 아이의 모습을 재현하는 데 있어 한계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흑인들은 백인의 가게에서 요리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육체적인 힘으로 환치되거나, 폭력을 마주하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리로 밀려난다. 이는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고유의 서사가 주어졌다면, 하는 가정을 반복하는 것을 그만 둘 수 없다.
   또한 한반도 안에서 재현되고 있는 타자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하는 질문도 동시에 들었다. 여성, 다문화 가족 구성원, 청소년, 퀴어 등 사회 속 소수자들은 때로 소설 안에서 기능적인 모습으로만 나타나 왔다. 우리는 어떻게 인물들을 재현해 내는가? 어떻게 인물들을 재현해야 하는가?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은 영영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내면의 폭력성을 끊임없이 인식하고자 해야 한다. 질문을 멈추는 순간 답변도 멈추기 때문이다. 괴로워도 그것은 아름답다. 나를 안심시킨다.






-----------------------------------------------------------------
참고문헌


1) 여성이 무엇인지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희미한 윤곽을 잡는 정도는 할 수 있다.

2) 캐롤 해니시 저, 한우리 기획·번역,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1969)」, 레드스타킹 외 저, 한우리 기획·번역, 『페미니즘 선언 ? 레드스타킹부터 남성거세결사단까지, 드센 년들의 목소리』, 현실문화연구, 2016 (첫 번째 찍은 날), 100-101쪽.

3) 김미덕, 『페미니즘의 검은 오해들 ? 가부장제, 젠더, 그리고 공감의 역설』, 현실문화연구, 2016 (두 번째 찍은 날), 73-74쪽 참조.

4) 캐롤 해니시, 전게서, 100-103쪽.

5) 한우리,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해제, 상게서, 110쪽.

6) 컴바히 강 공동체 저, 「흑인 페미니스트 선언문A Black Feminist Statement (1977)」, 상게서, 149쪽.

7) 래디컬 레즈비언 저, 「레즈비언 페미니즘 선언문The Woman Identified Woman(1970)」, 상게서, 118-124쪽.

8) 김미덕, 전게서, 92쪽 참조.

9) Mcdowell, Deborah E. “The Changing Same : Generational Connections and Black Women Novelists.” New Literary History 18 (1987): 281-302. Rgt, in Reading Black, Reading Feminist: A Critical Anthology. Ed. Henry Louis Gates Jr. New York:Meridian, 1990, pp.94-95. - 로이스 타이슨 저, 윤동구 역, 『비평 이론의 모든 것Critical Theory Today』, 앨피, 2012, 806쪽에서 재인용.

10) 패니 플래그 저, 김후자 역,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Fried Green Tomatoes at the Whistle Stop Cafe』(1987), 민음사, 2014(2011), 478쪽.

11) 프란츠 파농 저, 이석호 역, 『검은 피부, 하얀 가면Peau Noire, Masques Blancs』(1954), 도서출판 아프리카, 2016, 150쪽.

12) 패니 플래그, 전게서, 52-53쪽.

13) 박재영, 「텍스트의 모호성: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해체하기」, 『현대영미소설』 제20권 3호, 한국현대영미소설학회, 2013, 419-438쪽 참조.

14) 주디스 버틀러 저, 조현준 역,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1990), 문학동네, 2017(2008), 343쪽.


신난
졸업하고 나사가 모두 풀려버렸어요
어쩌면 좋아
(원래 풀려 있었어요)
(괜찮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메일 : rainbowbookmark@hotmail.com   |   트위터 : @rainbowbookm 후원계좌 : 국민은행 061701-04-278263   |   예금주 : 이다현(무지개책갈피)
Copyright © 2018 무지개책갈피.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
Warning: Unknown: open(/host/home2/rainbowbookmark/html/new/data/session/sess_suheot6iej551a368bp057epm5, O_RDWR) failed: Permission denied (13) in Unknown on line 0 Warning: Unknown: Failed to write session data (files). Please verify that the current setting of session.save_path is correct (/host/home2/rainbowbookmark/html/new/data/session) in Unknown on line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