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깊이 이어진다 ; 박민정 『아내들의 학교』 > 전지적 퀴어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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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깊이 이어진다 ; 박민정 『아내들의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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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분 댓글 0건 작성일 18-11-20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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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아내들의 학교, 문학동네, 2017





결코 분리할 수 없는 단어가 있다. 내게는 사랑과 연대가 그렇다. 사랑은 연대이기도 하며, 연대는 사랑으로 동력을 얻는다. 우리는 모두 연대한다. 설령 연대하는 방법을 모르고, 무섭고, 비겁한 줄도 몰라 뒤늦게 후회하더라도. 당시 하지 못했던 것들을 타인은 하게 두는 식으로라도. 우리는 마음 깊이 이어진다.

 

청순한 마음. 위선자, 윤수지와 이수지가 있다. 윤수지는 자신의 입시 컨설턴트를 맡은 이수지 선생에게 호기심과 호감을 느꼈다. 선생님의 향기, 곧은 자세, 깔끔한 차림, 예쁜 손가락에 매료됐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살하려고 했었던 시기였기에, 경청해주는 선생님에게 부풀린 부모 험담을 했었다. 선생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선생이 윤수지를 혼냈다. 불행한 아이들은 인내심이 부족해 탈선한 것이며, 견디지 못해 불행하다고 했다. 그런 윤수지를 선생님은 혼냈다. 자신의 험담에 웃음 짓던 그 얼굴로. 불행한 아이들을 바라보는 윤수지의 위선이 드러났다.

이수지는 그 당시 병들어 있었다. 상황은 늘 나쁘게 흘러갔고, 이수지는 윤수지 학생의 아버지가 꿈꾸던 교수가 되기 위해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에세이를 썼다. 윤수지 학생의 마음에 박힐 정도로. 잘 사는 집 아이들을 컨설턴트하며, 잘 사는 집 아이들의 부모가 명품 하나 안 걸친 자신을 어떻게 볼지에 대하여 경멸하는 이수지. 이수지의 웃음은 윤수지 학생에게 위선이었을까.

 

여보, 아무래도 우리 아이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은 탕아인 거야. 그렇지?

남편이 그런 말을 꺼냈을 때 나는 잘못한 것을 들킨 듯 화들짝 놀랐다.

-p220 천사는 마리아를 떠나갔다


천사는 마리아를 떠나갔다. 여기 필남이 언니가 있다. 흐트러짐 없이 빳빳한 여름 교복을 입고 영문학도가 되겠노라고, 그리고 정말로 영문학과에 진학한 사람. 운동권에 참가했다가 삶은 잃은 사람. 그런 언니를 봐 왔던 주인공은 자신의 딸이 언니와 비슷한 길을 걸으려 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언니의 곁에 있었지만, 함께 운동권에 있지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도 않았다. 어느 누구도 그런 주인공을 탓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인공은 고해하던 도중 눈물을 펑펑 흘리고 만다. 언니 말고도 자신의 친구 주혜가 부당대우를 받으며 일을 하다가 버스회사 앞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에조차 주인공은 끼어있지 않다. 한때는 그들과 마음 깊이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로 묶이지 못했다. 주인공은 이제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딸을 어떻게 대할까.

 

행복의 과학 / A코에게 보낸 유서

한때 엄마의 애인이었던 기노시타 히로무, 그의 아들 기노시타 미노루, 또 그의 아들 기노시타 류. 그리고 엄마의 딸인 하나. 편집자인 하나는 류의 책을 맡게 된다. 기묘하게 얽혀 있는 관계는 이상하게 영향이 오고 간다. 류가 아버지인 미노루의 범죄에 대한 폭탄 발언을 하자 하나의 편집까지 영향을 받는다. 하나는 애매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완벽한 타인으로 굴지만 사수인 수영과 함께 발을 들인다. 하나는 수영을 돕고 싶다. 사건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히 존재하지만. 방관자였던 하나는 수영 때문에 발을 들이게 됐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둘은 한데 묶였다.

 

버블기. 자이니치. 실제 시대를 공유하는 단어들이 일본과 한국을 오가는 인물들을 더 와 닿게 해주었다. 정말로 존재했을 가상의 인물들. 방관자인 하나의 관점에서 읽힌 그 시대의 역겨움과 경멸을 담담히 체감하고 고백한다. 그저 고백하는 소설 인가 하면, 지금 이 시대에서도 고백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깊이 체감하고 있어 혀끝이 쓰다. 많은 여성이 이 경험을 향유한다.

청순한 마음행복의 과학시리즈에서 부각된 그들은 위선자이며 방관자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일들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감정을 배제하고 낱낱이 전하거나, 발을 들이거나. 그들의 선택이다.

책을 다 읽고서야 저번 달 리뷰의 주인인 김현 시인의 추천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마음 깊이 이어진다.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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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은 멘탈이 없습니다.

리뷰가 올라갈 때쯤이면 여유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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