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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버로스, 「퀴어」 - 고통,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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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긱또 댓글 0건 작성일 16-10-1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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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버로스 「퀴어」, 펭귄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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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세대의 대표작가 윌리엄 버로스의 「퀴어」는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는 ‘동성애’에 대한 갈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는 이유로 30년 동안이나 세상 밖에 나오지 못하다가 1985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처음 출간된 비운의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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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로스는 마약 중독자의 이야기를 다룬 전작 「정키」와 같이, 작가의 분신 격인 인물 ‘윌리엄 리’를 다시 한 번 등장시킨다. 대략적인 줄거리의 얼개는 이러하다. 마약으로 인해 환각과 고통을 수반하는 금단증세에 시달리고 있는 주인공 리가, 유진 앨러턴이라는 청년을 향한 반응 없는 사랑을 갈구하는 내용. 이야기는 그게 전부다. 분량이 많지 않은데다 어찌 보면 큰 사건 없이 비교적 잔잔하게 흘러가 읽는 이에 따라서는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가벼운 페이지의 집합 속에 담긴 한 개인의 고통은 꽤나 크고 상해있어서 읽는 사람을 마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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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리는 불행해 보인다. 그는 되돌아갈 곳이 없는 방랑자처럼 끊임없이 마약과 사랑을 찾으며 정처 없이 미대륙을 떠돈다. 허나 온 몸을 비집고 들어와 찢어놓는 금단 기간의 고통보다 더욱 그를 애처롭게 만드는 것은 당연하게도 앨러턴의 냉담함과 외면이다. 몽롱한 환각 상태와 육체적 아픔을 오가는 약물 중독 상태에서 리는 자신의 강박과 넋두리를 받아줄 단 한명의 관객, 유일한 관객이었으면 싶은 앨러턴에게 집착하지만 그는 자꾸만 객석을 이탈한다. 홀로 남겨진 리의 과도하게 연극적인 혼잣말과 제스처들은 책 속의 다른 인물들뿐만 아니라 읽는 이들마저 민망하게 만든다. 그는 그 가운데서 너무나 처연한, 마치 빛 한줄기 없는 무대에 올라와 있는 버림받은 배우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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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와 앨러턴의 관계는 매우 진솔하게 그려진다. 단순히 리에게 있어 강박을 벗어내기 위한 사랑 이상의 관중 자체였던 앨러턴은 ‘자신은 결코 퀴어가 아님’을 리의 손길을 거부함으로써 나타낸다. 둘은 분명 동행하고 있지만 그것은 리에게 너무나도 외로운 동행에 다름없다. 결코 가질 수 없는 사람을 사랑했을 때 남는 것은 몇 줌의 눈물 정도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리의 말과 행동은 이미 처절한 자기고백이 되어 독자에게 전해지고 그 고백에 동감과 연민, 혐오를 더해 느끼며 소설 자체는 하나의 소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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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로스는 자신의 아내 조앤을 실수로 쏘아 죽였던 사건이 계기가 되어 이 소설을 썼다. 아무리 애써도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얼룩진 과거를 글쓰기로 승화하며 자신이 경험한 고독과 괴로움을 작가로서, 소설로써 선언한 것이다. 그는 이 글쓰기에서 ‘퀴어’이자 한 인간이었던 자신의 불행에 오롯이 집중했다. 「퀴어」는 작가의 모든 상실과 통증과 욕망에서 비롯된 고통이 응축된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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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고 절망에 가까운 퀴어 서사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통용되고 있으며 때때로 ‘우리도 행복할 수 있다’라는 외침과 이미 존재하고 있는 행복한 삶을 지워버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 받는 퀴어 서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행복한 퀴어 서사만을 지지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소수자가 가지는 고통의 서사는 이미 우리 안에 공공연히 존재해왔고, 아마도 더 나은 세상이 되기 전까지는 존재할 것이다. 지향해야하는 것은 더 많은 종류의, 그러니까 퀴어 서사의 다양성이다. 독자는 리의 고통을 곱씹으며 그 날 것 그대로의 자기혐오와 마주한다. 버로스의?「퀴어」 속 리의 불행과 비참함은 어떤 종류의 자기검열 없이 토해내듯 쏟아져 나온 어느 퀴어의 자기고백이라는 점에서 진실로 읽는 이와 소통하고 있다. 혹은 독자가 잘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그것은 이미 의미 있는 하나의 고백이 된다. 자신과 자신의 목적에 전혀 확신을 갖지 못하는 자의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우울한 감정과 분열된 현실일지라도 그것 또한 의미를 가지는 퀴어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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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에서는, 마치 향신료에 버무린 날고기의 냄새가 난다. 「퀴어」를 버로스의 작품 중 가장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언정 그의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는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버로스는 「퀴어」의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밝혔다. '「정키」는 내가 직접 쓴 것이라면, 「퀴어」는 그 안에 내가 적혀 있는 기분이다. (p.16)'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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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또(geekster)

세상의 모든 색깔과 색깔 없음을 사랑합니다.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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