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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으로 살고싶었던 조연 한 명 - 이성숙, <우리는 땅끝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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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홍 댓글 0건 작성일 16-07-23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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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숙 장편소설 <우리는 땅끝으로 간다> 별숲,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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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퀴어문학 리뷰를 쓰며 접한 국내 청소년 문학이 네 번째로 접어들었다.?이 작품은 청소년 자살을 키워드 삼아,?네 명의 아이들이 자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중 표지에 그려진 기한이라는 주인공과 마리라는 여자아이가 주로 스토리를 끌고 간다.?이 책을 퀴어문학으로 분류하게 한 '샤인'이라는 등장인물은 표지에 없다. 기한과 마리를 제외한 등장인물이?다소 평면적이고 단편적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쉬웠지만, 소설의 조화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첫 문단부터 이야기하지만, 리뷰에서 다룰 '퀴어한'부분은?분량이 적다. 다소 부자연스럽거나 유치한 문장들도 많이 등장한다. 다만 MTF 트랜스젠더 청소년인 샤인의 사연은 왜곡 없이 임팩트 있게 그려졌고, 조연에 대한 특유의 무심함이 이 소설에선 순기능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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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렇게 살 수 없어. 한 번도 내가 남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 난 여자니까. 몸만 남자로 태어난 여자니까. -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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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등장하는 샤인은 MTF 트랜스젠더이다. 첫 등장에서는 그저 핑크색 스키니진을 입고서 만화?대사처럼 딱딱한 말투를 쓰는, 빼빼 마른 남자아이로 묘사된다. 필자는 처음부터 이 소설에 그가 등장하는걸 알았지만, 핑크색 스키니진에서 감을 잡지 못한 사람은 그의 커밍아웃에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그는 조연보다도 약간 단역 같은 비중을 갖고 있었지만, 작품 내에서 두 번이나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 첫 번째는 모두가 같이 쓰기로 한 돈을 갖고서 자신의 옷을 사버린 일이었고, 두 번째는 그 옷을 입고 한겨울 강물에 빠져버린 일이었다. 이야기 자체는 상투적인 퀴어서사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죽기로 한?순간에 자신이 있고 싶었던 옷을 입은 그 심정이 전해져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 자신으로 살 수 없었던 그, 아니 그녀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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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쩌면 샤인은 처음부터 살고 싶어서, 제대로 살고 싶어서 죽음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1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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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범행(?)이 드러나며 이어지는 커밍아웃에 아이들은 놀라지만, 그것이 이야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나쁘다면 나쁘고, 좋다면 좋은 점이었다. 그녀를 쏘아붙이고, 혐오 발언을 했던 아이는 나중에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희생하면서도 강에 빠진 그녀를 구해준다. 그리고 위의 인용문은 그녀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겠다 마음먹었을 때 주인공인 기한이 떠올린?독백이었다. 살고 싶어서 선택한 죽음. 어쩌면 죽음에 대한 충동과 함께 찾아오는 건 살고 싶다는 충동이 아닌가 싶다. 어느 누가 단순히 죽고 싶어서 죽는가. 자살은 죽고 싶어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살 수 없어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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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끝일 것 같지? 그렇지 않아. 옆에 남겨진 사람들 가슴에 그 죽음이 고스란히 남거든. -1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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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의 짧은 등장에 대한 고찰은 마쳤으니, 이제 이 소설이 주는 중심 메시지이자, 아쉬운 부분에 대해 써보겠다. 위의 인용된 구절이 포함된 대사들은 하나하나 판에 박힌 교과서적인 이야기였다.?'그걸 누가 몰라?'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인데,?맞는 말이라서?더 밉상이었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은 높다. 우연히도 지난달 올렸던 리뷰에서도 누군가의 자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살은 어떤?사고보다도 정신적으로 더 참담한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생물도 살아야 한다는 본능을 갖기 마련인데, 그것을 초월할 정도의 충동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작가가 아직 꽃피우지 못한 젊음에게 못다 한 삶을 포기하지 말라 말하고 싶은 것은 충분히 알겠다.

?이 소설에 대해 전반적인 감상을 쓰자면, 무거운 소재를 희망적으로 풀어낸 '청소년'소설이었다. 전지적 퀴어 시점으로?볼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소설에 등장한 네 명은 다 소수자였다. 나약하고, 막막하고, 세상에 외면당한 아이들. 샤인의 행동들과?커밍아웃이 별다른 문제 없이 받아들여진 것도 그런 정서를 바탕으로 네 명이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절망 속에서도 살아 있기에 아름다운 세상의 모든 생명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라고 맨 앞에 쓰인 작가의 말이 인상 깊었다. 우리는 살아 있기에 아름다운 생명이다. 그 모습이, 삶이 어떠하든 고통 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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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홍 [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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