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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으로의 편입, 공간으로부터의 탈출 ? D. H. 로렌스, 「프로이쎈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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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브 댓글 0건 작성일 16-07-0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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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H. 로렌스, 백낙청 역, 「프로이쎈 장교」, 『목사의 딸들』, 창작과비평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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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으로의 편입, 공간으로부터의 탈출 ? D. H. 로렌스, 「프로이쎈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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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H. 로렌스는 섹슈얼리티에 관심이 많았고, 인간을 구성하는 하나의 커다란 요소가 성욕이라고 보았던 작가이다. 그의 단편 소설인 「프로이쎈 장교」에는 대위와 당번병 사이의 동성애적 코드가 오고 간다. 그러나 비극적으로 끝나게 되는 이들의 관계가 군대라는 공간 속에서 발현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군대는 다른 무엇보다도 획일성이 강요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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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당번병을 향한 대위의 관심은 노골적이다. 대위는 “젊고 정력적이고 무의식적인 부하의 존재를 자신의 주위에 의식”하면서, “그 젊은이 개인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벗어 날 수 없”게 된다(152).[1] 또한 자신도 모르게 “당번병에 대해 중립적인 감정을 회복할 수가 없”으며, “저도 모르게 그는 당번병을 늘 지켜보”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이 작품은 서술한다(154). 그러나 당번병을 향한 대위의 이와 같은 욕망은 군대라는 제한된 체계 안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기에, 대위는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이 감정을 인정하지 않으려 무진 애를”쓰고, “당번병에 대한 감정이,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부하 때문에 자극되어 느끼는 감정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157). 그러는 사이 대위의 의식 속에서 이 “색다른 무엇[은] 계속 자라나도록 방치”된다(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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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당번병은 대위의 욕망으로부터 도망쳐 군대 체계와 사회적 평범함의 범주에 편입하고자 하는 인물로 보인다. 그는 여자 애인이 있고 그녀를 위해 시를 쓰기도 하는 인물인데, “자기 자신을 손상시키지 않은 상태로 유지하려고” 애를 쓰며(156), 급기야는 대위로부터 “자기 자신을 구해야만 한다는 목적”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166). 그리고 이들의 관계는 당번병의 손에 의해 대위가 죽임을 당하고, 당번병 역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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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성을 강요하는 군대는 평범함을 강요하는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위가 계속해서 당번병에게 저지르는 폭력은 그가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행동 지침일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이 대위의 폭력에 대한 정당화일 수는 없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당번병을 향한 폭력이 대위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 폭력이라는 사실이다. 당번병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려 여자를 데리고 며칠 떠나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가짜 쾌락”일 뿐이며 대위가 “여자를 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점에서, 그 폭력은 불가피한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158). 즉, 동성애를 위한 사회적 언어가 부족한 군대라는 공간에서, 대위의 욕망은 언제나 잘못된 방식으로 분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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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말미에서 대위는 결국 당번병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이러한 결말은 ‘평범하지 않은’ 대위의 욕망에 대한 ‘처벌’이 아니다. 오히려 대위의 욕망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사회로부터의 불가피한 ‘탈출’이자 ‘회피’이다. 군대라는 획일적 공간에서 정해진 규범 안에 편입될 수 없었던 것처럼 평범함을 강요하는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대위의 처지가, 현대 사회의 성소수자들의 처지와 얼마나 다른지는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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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 H. 로렌스, 백낙청 역, 「프로이쎈 장교」, 『목사의 딸들』, 창작과비평사, 2001. 이후로는 페이지수만 괄호에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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