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였고 예성이었던 너는. - 윤이형, <루카> > 전지적 퀴어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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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였고 예성이었던 너는. - 윤이형,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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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빼어날수 댓글 0건 작성일 16-06-17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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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6회젊은작가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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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루카다. 내가 딸기인 것처럼. 오직 하나뿐인 진짜 이름 같은 건 세상에 없다.

너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당연히 수잰 베가의 노래 <Luka>를 떠올렸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조금 궁금해졌다. 혹시 복음서를 지은 사람 이름인가. 누가라고도 루가라고도 루크라고도 한다는, 제법 헷갈리는 그 이름 말이다. -루카. 1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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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 작가의 단편 ‘루카’는 제 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 중 세 번째 작품으로, 두 게이의 사랑과 이별을 담담한 어조로 엮어낸 작품이다. 퀴어 커뮤니티에서 만난 나 ‘딸기’와 ‘루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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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들 중 하나는 두 인물이 만나기 전 겪은 하나의, 각기 다른 커밍아웃이다.

커밍아웃은 힘들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만큼 고민되고 괴로운 게 없다. 아무리 내게 있어 믿음이 가는 사람이라도 그가 호모포비아일 경우 커밍아웃을 하는데 있어 망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땅의 현실이다.

그런 커밍아웃 중에서도 가족에게 하는 커밍아웃이라면? 가장 가깝고도 믿음직한 존재인 가족.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가족이 단순한 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은 관계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지지해 주어야 할 존재라는 말과도 같다. 하지만 만약 그런 그들에게 거부당한다면? 그것에 대한 두려움은 많은 동성애자들을 침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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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땀범벅이 된 채 그렇게 몇 시간쯤 걸었을까. 그는 갑자기 오래전에 죽은 자신의 아들, 너를 떠올렸다. (중략) 그러자 너에게 소리친 기억이 떠올랐다. 계속 소리를 쳤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입이 없어지고 목소리가 없어지고 몸 전체가 녹아 없어질 것 같았으니까요. 아마도 어떻게 그렇게 모두를 속일 수 있느냐는 말을 했을 겁니다. 가족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고 너 자신을 속이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요. -루카. 1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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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와 ‘루카’ 는 각각 서로를 만나기 전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한 상태이다. 다만 그 형태가 조금 다른데. ‘딸기’가 스스로의 의지로 인한 커밍아웃을 했다면, ‘루카’의 커밍아웃은 사실상 아웃팅에 가까운 커밍아웃이었다. 하필이면 그의 아버지는 교회의 목사였다. 루카는 자신을 부정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모든 게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지 않았을까, 준비되지 않은 커밍아웃을 하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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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글의 시간은 ‘딸기’와 ‘루카’의 이별, 그리고 ‘루카’의 죽음 이후 그의 아버지와 만난 ‘딸기’의 시간으로 흘러간다. 아버지는 말한다. ‘루카’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망가져버린 자신이 ‘루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딸기’는 여기서 분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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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솟구치는 화를 아무래도 누를 수가 없었다. 타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는 것으로 그렇게 간단하게 침묵의 대가를 치르고 너라는 존재를 복원하려 하는 그가. 그를 그럴 수 있게 하는 힘이. -루카. 1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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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루카>를 두고 말한다. 평범한 사랑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고. 그들은 사랑을 했다. 평범한 사랑을 했다. 그걸 평범하지 않을 것, 종내에는 이상한 것으로 치부하여 그를 밀어내고 후에야 어떻게든 그 흔적이나마 되찾으려 하는 발버둥의 의미가 ‘딸기’를 화나게 한 것이다.

첫 커밍아웃을 소중한 경험으로 간직하는 ‘딸기’가 모든 것을 버려야 했던 커밍아웃을 한 ‘루카’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길을 걸었고, 앞으로 걸어야 할 사람으로서, 이별 후 루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뿐이지 아니었을까. 화를 내어서, 자신과 ‘루카’를 막았던 모든 것에 분노함으로서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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