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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리 잭슨,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 '마녀' 자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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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긱또 댓글 0건 작성일 16-06-07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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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리 잭슨,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엘릭시르

*작품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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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미스터리의 대가 셜리 잭슨의 마지막 작품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는 기괴하고 매력적이다. 읽는 내내 머릿속을 아스라이 휘감는 이야기의 재미는 마치 작품 속에서 살해 도구 등으로 등장하는 ‘비소’나 독극물과 같은 치명적인 위험함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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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다른 소설 ‘힐 하우스의 유령’이나 ‘제비뽑기’등과 같은 다른 작품에서도 목격할 수 있는 유려한 장점, 즉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악의와 광기를 짚어내고 그것을 매력적인 서사와 분위기로 연출하는 능력은 이 소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 소설이 그녀의 다른 소설보다 더욱 매혹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이유는 주인공 메리캣과 메리캣의 언니인 콘스턴스가 공유하는 지독히도 폐쇄적인 연대의 공간 때문인데, 이것은 의미심장하게도 퀴어 서사로 읽히거나 혹 보다 가벼운 ‘백합’ 장르로 읽혀지는데 충분한 여지를 제공한다.

소설 속 메리캣과 콘스턴스는 6년 전 설탕 속에 든 비소로 가족 모두가 독살당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살아남은 이는 세 사람, 바로 메리캣과 콘스턴스 그리고 사건으로 인해 몸과 정신이 망가진 나이 든 줄리언 삼촌뿐이며 쥐를 잡기 위해 비소를 사왔고 요리를 했기 때문에 범인으로 지목받은 콘스턴스는 증거부족으로 풀려난다. 작품은 블랙우드 가의 독살 사건 이후 살아남은 대저택의 두 자매와 삼촌의 일상을 이야기하며 이는 시종일관 열여덟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어린아이와 같은 어조로 이야기하는 메리캣의 서술로 쓰인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메리캣의 유아적인 내면과 이야기의 기괴함을 극대화하여 독자들의 공포감을 증폭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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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에서 콘스턴스와 메리캣은 ‘독살자’와 ‘마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마을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잔인함이 뒤섞인 박해를 받는다. 콘스턴스는 외출에 대해서는 엄두도 못 내고 오직 메리캣만이 일주일에 두어 번 식료품 등을 사기 위해 바깥으로 나온다. 바깥으로 나오는 메리캣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 또한 삐뚤어져 있다. 자신들을 향해 끊임없이 날아오는 날선 증오와 두려움의 화살 속에 메리캣의 내면은 그들을 향한 분노와 혐오, 그리고 자신의 공간에 대한 갈망으로 얼룩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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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은 지속적이고 집단적으로 형성된 혐오로 인해 계속해서 고립되어 있는데 이 고립의 균열을 깨기 위해 낯선 인물인 찰스가 찾아오고 그로 인해 메리캣이 영원히 머무르고자 하는 언니와의 세계는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대저택 너머 바깥에서 찾아온 찰스에게서 콘스턴스는 어렴풋이나마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같은 것을 목격하는데 비해 메리캣과 찰스의 갈등은 점점 심화된다. 메리캣에게 있어 찰스는 자신만의 이상적인 달나라에 부합하지 않는 불필요한 존재였으며 블랙우드 가의 막대한 재산과 저택을 노리고 콘스턴스에게 접근한 찰스에게 메리캣은 매우 거치적거리는 어린애였을 뿐이었으니, 이는 각자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따로 존재하지만 콘스턴스라는 교집합을 사이에 둔 채로 기싸움을 벌이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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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일종의 저주가 오가는 신경전 끝에 찰스의 파이프로 인하여 저택에 거대한 불이 나고 줄리언 삼촌이 죽게 되면서 메리캣은 콘스턴스와 함께 다시 또 영원히 걸쇠를 채우고 마을 사람들이 명명한 ‘마녀’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거대한 대저택이 화염으로 휩싸인 순간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이 한 날의 축제와도 같은 것처럼 묘사된다. 그들은 제각기 소리를 질러대며 그들이 만들어낸 마녀를 사냥하기 위해 대저택을 침범하여 부수고 큰 소리로 웃어댄 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자매를 정상적인 여성들로 교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순간적으로 중세 마녀 화형식의 광기를 연상시킨다. 이후 삼촌의 죽음과 대저택의 화재, 찰스의 도망?등 일련의 사건으로 현실과 완전히 결별하기로 한 메리캣과 콘스턴스는 그토록 메리캣이 원하던 고립의 장소에 어물게 된다. 마을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는 이제 더 이상 그녀들의 귓가에 울리지 않으며 완벽하게 고독해졌을 때 자매는 최고의 안정과 행복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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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폐쇄적인 연대는 오로지 서로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소설의 초반부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마을 사람들로 표현된 다수가 소수에게 무차별적으로 행사하는 폭력성과 잔인함에서 기인한다. 소설의 말미 부분에 이르러 ‘진짜 마녀’로 추앙받게 되는 두 자매는 인간의 타인에 대한 혐오가 두려움으로 탈바꿈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비로소 목격하게 되는데, 마을 사람들은 마녀 자매가 자신들의 저택을 침범하고 부수었다는 이유로 저주를 내리지 않기를 바라며 그녀들이 잠군 문 바깥에 음식을 가져다놓는 의식을 반복한다. 다수가 소수의 고립과 특별함에 두려움과 경외심을 가지고 복종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광경은 언뜻 보면 짜릿한 권력 뒤집기의 상황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실상 달라진 것은 크게 없다. 자매는 모욕과 조롱, 폭력을 면전에서 받게 되는 일은 더 이상 겪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집단적 배타의 대상이며 마을 사람들이 그녀들에게 보이는 두려움은 그 혐오와 맥락을 같이한다. 자매를 특별하고도 두려운 존재로 대상화하여 또 다른 방식으로 혐오하고 있는 것에 다름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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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일그러진 내면의 메리캣은 혐오가 만들어낸 완전해진 고립 속에서 더없이 만족스러워하고 행복해한다. 이는 결코 그녀를 꾸중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메리캣도 참.”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받아준, 자신의 살인마저도 뒤집어쓰고 나선 콘스턴스라는 존재가 있기에 가능했을 고립의 행복이다. 여기서 메리캣의 서술방식이 어째서 어린아이의 말투를 취하고 있는가가 예측가능해진다. 메리캣은 자신을 미워하고 꾸중하고 혼내는 이들은 달나라에서 제외시키는 극단적이고 단순한 논리를 가진 더없이 자기중심적 자아의 어린아이다. 블랙우드가의 가족들도, 마을 사람들도, 찰스도, 메리캣을 미워했고 혼냈고 끊임없이 배제시켰다. 그 가운데 자신에게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과 두려움이 포함된 관용을 보여준 것은 언니인 콘스턴스 뿐이다. 그랬기에 콘스턴스는 살아남았다. 이같은 사실은 사랑이 빠지고 오직 두려움에서 비롯된 이해는 결국 온전치 못한 행복과 고립을 낳을 뿐이며 그것에서 만족할 수 있는 행복감이라는 것은 상대에 있어서든 본인에게 있어서든 결국 끔찍하도록 유아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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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소수에게 행하는 집단적 폭력의 광기와 잔인함에 대해 메리캣의 입을 빌려 분노 섞인 목소리로 토해내면서도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는 부분적인 체제 전복성을 서사와 결말로써 동시에 말하고 있다. 글의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이것은 어떤 이에게는 퀴어니스(queerness)와 소수자담론을 포함한 서사로, 어떤 이에게는 끔찍하게 기괴하고 음울한 두 자매의 ‘백합’적인 스릴러 서사로도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읽는 이에 따라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소설 속에서 살인의 도구로 쓰인 비소와도 같이 치명적이고도 위험한 재미를 갖춘 작품임에는 논란의 여지가 크지 않으리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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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또

모두가 사랑하고 사랑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퀴어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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