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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나이얼 레즈비언의 강렬한 자기고백, 일까?―천운영의 「젓가락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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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숭아 댓글 1건 작성일 16-06-03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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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나이얼 레즈비언의 강렬한 자기고백, 일까?―천운영의 「젓가락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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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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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젓가락여자」에는 두 여자가 등장한다. 화자인 동시에 주인공인 여성의 이름은 김미경, 공대 출신인 남편과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대학원에 다니고 있으며 독서토론회의 회장이고, ‘책 읽어주는 여자’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소설가다. 본명은 양영은, 필명은 서진. 주인공의 선배였고, 총여학생회의 편집부장으로 있었으며 주인공과 함께 사 년제 대학을 다니다가 소설을 쓰겠다고 다시 전문대에 들어갔다. 최근에는 스페인에 머물면서 먹었던 음식을 주제로 산문집을 냈으며, 자신의 소설집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줄곧 주인공의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이 소설에는 두 인물의 인적사항과 함께 팽팽한 감정도 함께 들어 있다. 이를 두고 「젓가락여자」가 수록된 소설집 『엄마도 아시다시피』의 말미에 붙어 있는 「엄마가 되지 않은 여자들」에서는 ‘대결 구도(p.263)’나 ‘선배의 배신과 후배의 복수 이야기(p.263)’, 나아가 ‘자기모독(p.268)’의 서사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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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이 작품을 디나이얼 레즈비언의 강렬한 자기고백처럼 읽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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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경과 영은은 학교 앞 지하민속주점에서 처음 만난다. 젓가락 끝으로 김칫국물을 찍어 그림을 그리고 있던 영은은 별안간 고개를 들고 ‘깃발을 꽂아, 깃발을!(p.83)’이라고 소리친다. 그걸 보고 미경이 영은에게 말을 걸면서 둘의 관계는 시작된다. 미경은 둘이 마주친 순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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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날 그 술집에서 우리는 서로 뭔가 통하고 있다는 걸 느꼈던 거지. 선수가 선수를 알아보는 것처럼. 언니는 나를 찍고, 나는 언니를 찍고. 그런 거 알죠? 전기가 통하는 거. 정말 전기가 짜릿하게 올라오는 기분이었다니까요.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죠.

한참 동안을.

그래요, 그때 우린, 뭔가 통했죠. 그래요. 통했어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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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서로가 통했음을 강조한 뒤, 미경은 '아휴, 이 사람들은 어째 이런 얘기에 더 신 나 해. 꼭 교생 첫사랑 얘기 듣는 여고생 표정이잖아(p.88)'라고 말한다. 뒤집어 말하면 이건 미경의 첫사랑 이야기다. 이어 그녀는 '멋있다구요? 멋있죠? 그래요 멋있어요. 나도 완전 반했잖아. 언니가 묘하게 사람 끌어당긴다니까. 남의 기운을 자기 쪽으로 싸악 끌어모으면서 단번에 잡아채. 알고 보면 무서운 사람이지. 그러니까 매력이랄지 마력이랄지, 암튼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p.88-p.89)'라는 말까지 한다. 그녀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통했고, 또 반했다고. 이후 둘은 함께 총여학생회 활동도 하고 동거도 하면서 '딱 붙어 다녔다(p.91)' 그러나 곧 둘은 좋지 않게 끝을 맺는다. 영은이, 서진이 미경을 배신했기 때문이었다.

?비밀조직에 미경을 가입시키는 날 영은은 탈퇴를 선언한다. 미경은 거듭 배신이 아니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독서토론회 회원들과 독자에게 말하고 있지만, '조직 입장에서 당연히 배신이지. 나한테도 배신이고. 타이밍 한번 절묘했잖아? 나를 조직 안으로 들여놓은 때, 언니는 밖으로 나가겠다고 선언을 하고. 그걸 그냥 공교롭다고만 볼 수도 없고(p.95)'라며 본심을 저도 모르게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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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미경의 속내가 제대로 드러나는 건 둘이 재회한 후다.

?영은, 혹은 서진 앞에서 미경은 그동안의 자신의 행동을 줄줄이 늘어놓는데, 그 행동이라는 것이 묘하기 짝이 없다. 영은의 첫 책이 나온 날 미경은 '괜히 서점 기웃기웃하면서 사람들이 좀 사가나 살펴보고, 언니 책 잘 보이는 데다 얹어놓고(…) 선물할 곳 있으면 다 언니 책으로 했(p.98)'으며 '학교 사람들한테 일일이 전화해서 언니 책 나왔다고 알려주고(…) 인터뷰 기사도 오려서 스크랩도 해놨(p.99)'다고 말한다. 두 번째 책이 나온 뒤 미경은 조심스럽게 영은에게 연락을 한다. 하지만 영은은 '김미경?(p.99)'이라는 말로 한 번에 미경을 사로잡는다. 미경은 이에 '언니가 아는 사람만 해도 열 명이 넘는다던 그 흔한 미경이들 중에서, 내가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단박에, 이 김미경이를, 알아내주다니(p.99)'라며 감격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은근슬쩍 영은을 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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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언니 결혼은 안 해요? 사귀는 사람 없어요? 왜 없겠어. 남자들이 줄을 섰겠지. 그런데 언니 아직 거기 살아요? 녹번동인가? 그쪽 언저리 지나갈 때마다 언니 생각했는데. 혹시 언니가 장이라도 봐서 지나가지는 않을까 하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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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미경은 '언니의 소설은 내가 다 따라 읽었으(p.102)'며, '인터뷰 기사랑 평론이랑 어디 강연 나가서 한 말까지 다 알고 있(p.102)'고?'또 개인적으로 취향이랑 성격이랑 이력이랑 다 잘 알고(p.102)' 있다고 자랑(?)한다. 지나치게 집착적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미경이 영은에게 이러는 이유는 딱 한 가지뿐이다. 자신을 배신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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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 언니는 그 좋은 시절 보내고, 나 막차 태우고 도망가고. 나 배신하구 가서 언니는 소설가 되구 나는 인생 꼬이구. 뭐 특별히 꼬인 건 없지만.

언니가 배신이 아니라면 아닌 거죠. 물론 저도 언니가 배신했다고 생각 안 해요. 다른 사람들이 그런 시선으로 봤다는 거지. 언니 졸졸 따라다니더니 배신당해서 안쓰럽다고. 나더러 언니 추종자래. 추종자가 배신을 당했으니 그야말로 끈 떨어진 연이지. 아니지, 연도 없는 끈을 붙들고 있는 거지. 그게 멍충이지 뭐야. 언제 적 일인데요. 저, 다 잊었어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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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미경은 잊지 않았다. 그 일과 함께 영은을 만난 뒤 모든 일을 그녀는 잊지 않았다. 잊지 않은 채 그녀는 영은의 주위를 맴돌았고, 마침내 재회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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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언니네 집에 간 적 있어요. 언니는 모르겠지만.

그게 언제더라? 녹번동 그 집. 전복 한 바구니 들고. 왜 얘기 안 했냐고요? 얘기할 상황이 아니었지. 맞아요, 그럴 상황이 아니었어.

그게 그러니까 전복 때문에. 전복이요. 어느 날 신랑 거래처에서 전복을 선물 보내온 거야. 근데 그게 큼직큼직한 게 꽤 먹잘 것이 있겠더라고. 너무 많기도 하고 언니 생각도 나고. 그래서 전화를 했지. 전복 얘기는 안 하구 그냥 언니네 집에 놀러 가면 안 되겠느냐고. 서재 구경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언니가 마감 중이라 안 되겠다는 거야.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고. 그래 알겠다고 했지. 가만 생각하니 너무 안쓰럽잖아. 소설이 뭐라고 밥도 못 먹고 써? 그래서 일단 싸 들고 집을 나섰어. 전복만 얼른 전해주고 오려구. 괜찮으면 조용히 전복죽이나 끓여줄까 하고. 그런데 막상 언니 집 앞에 도착하니까 괜한 방해가 되려나 걱정이 되더라구. 원래 우리, 글 쓰는 사람들, 중간에 흐름이 흐트러지면 신경질 나잖아요. 내가 잘 알지. 어쩌나 싶어서 그냥 차 안에 앉아 있는데, 언니가 딱 오는 거야. 양손에 뭐 잔뜩 사가지고. 어떤 머리 허연 남자 팔짱을 끼고서.

사이가 좋아 보이더라?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 사람이?

기분 참 이상하더라. 이게 뭔가 싶고. 아무튼 그래서 그냥 집으로 왔어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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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서 미경은 영은, 또는 서진에게서 두 번째 배신을 당한다. 두 번 배신당한 미경의 공격 앞에 영은은 별다른 역공도 하지 못한다. 미경은 이윽고 쐐기를 박는다. '어쨌거나 언니는 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분이세요. 언니 덕분에 제가 있을 수 있었어요. 그야말로 나의 깃발, 이시죠. 정말이에요. 늘 고마워하고 있어요. (…) 이번엔 제 믿음을 배신하지 마세요.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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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영은 그리고 서진은?미경을 배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미경은 그런 영은과 서진에게 끈덕지게 매달릴 것이다. 우리는 이 둘의 미래가 어떻게 될런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다.?어쨌거나 영은은 미경이 남긴 저 마지막 말,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이고, 그녀 덕분에 자신이 있을 수 있었고, 자신의 깃발이었고,?늘 고마워하고 있다는 저 말만은 미경의 진심일 거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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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운영, 「젓가락여자」, 『엄마도 아시다시피』, 문학과지성사, 2013, p.86-87.

2) 위의 책, p.100.

3) 위의 책, p.104-105.

4)?위의 책, p.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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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박복숭아님의 댓글

박복숭아 작성일

또 20분 늦게 업로드해서 면목이 없습니다 저를 죽여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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