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에서 트랜스맨 읽기 ― 임혜기, 『사랑과 性에 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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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혜 댓글 0건 작성일 16-05-14 17:42본문
임혜기,?『사랑과 性에 관한 보고서』(고려원,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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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분명한, 혹은 분명해야 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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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최초로, 어쩌면 현재까지도 유일하게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하는 트랜스젠더를 주요 등장인물로 다룬 이 소설은 작가 임혜기가 실제 FTM을 보고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진짜와 가짜의 구분, 여성이었던 사람이 지금은 얼마나 남성다운지를 묘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소설의 첫 장면은 세욱이 결혼을 앞두고 성기수술을 고민하고 있는 장면이다. 세욱은 수술을 유보하고 병원을 나서면서 대기실에 앉은 사람들을 보고 “그 누구도 겉으로 보기엔 완전하다. 훌륭한 남자들이었다.”(16)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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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세욱과 결혼할 진주의 첫 등장은 이렇다. 영화배우인 진주는 해외 로케 촬영을 제대로 마치지 않고 홀로 귀국하였는데, 공항에서 트렁크 검사관에게 검사를 당하면서 성희롱을 당하고, 주위 사람들도 그녀 자신도 그녀에게서 여배우임을 의식한다. 즉 작가는 세욱에게서는 성기수술을 마치지 않은 FTM이라는 점을, 진주에게서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젊고 아름다운 여자’인 진주는 세욱에 대해 회상하면서 이렇게 정의한다. “그는 진품의 남자다. 모조품이거나 날림으로 만들어진 남자가 아니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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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자의 이런 태도는 하리수 등 시스젠더 헤테로 중심 사회가 트랜스우먼?연예인들의 ‘여자보다 예쁜’ 모습을 통해서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닮았다. 남성은 모름지기 성기가 있어야 하며 여성은 모름지기 아름다워야 한다. 그것은 그 당사자가 지정성별대로 살든지 그렇지 않든지와 무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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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묻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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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완벽한 남자’가 되는 것을 트랜스맨의 지향으로 둔다면 그 과정은 완성되지 못한 몸이고, 탈락해야 하는 무엇이고, 묻어버려야 할 과거로 치부해야 할 것이다. 소설은 과정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 세욱의 누나 세영이 그에 대해 쓴 시나리오에서 수술과 호르몬 등 관련 전문용어를 나열하는 작가의 노력은 수술대 밖, 병원 밖, 성전환 외의 삶을 배제시키는 데 기여한다.?세욱은 누가 보아도 겉으로는?완벽한 남성으로서 진주와 만난다. 둘의 만남에는 어색하거나 불편한, 성별이 혼재하는 상태가 끼어들 틈이 없다. “남자야? 여자야?” 헷갈리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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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성전환 수술과 진주의 과거를 은유적으로 연결지으려는 시도도 보인다. “진주는 본명 양자를 생각했다가 금세 떨구어 버린다. 그 이름은 이미 그녀와 걸맞지 않다. 7년 전에 작명인에 의해 거세된 이름이었고 성형된 부분”(29)이라는 서술이 그렇다. 또 진주의 올케는 진주에게 결혼식 아침에 하는 신신당부를 한다. “절대 니 입으로 지난 일 발설하면 안 되느니라.”(56) 여기에서 지난 일은 진주가 영화감독 박선우와 내연의 관계를 맺었던 일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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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케의 당부는?앞으로 벌어질 일의 복선 같다. 그리고 이 복선을 통해 작가는 세욱의 비밀이 진주의 비밀과 같다고, 결혼하는 모든 부부가 과거가 있는 것처럼 이 부부도 그렇다고 하는 것 같다. 이런 태도는 진주의 연애가 과거의 일인 것처럼 세욱의 ‘남성 이전’ 역시 과거의 일이니 모두 묻어두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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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런 태도는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전의 자기를 공백으로 남겨둔다 해도 말이다. 이에 대한 문제시는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이므로 이 글에서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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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애 결혼 이데올로기와 근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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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애초에 이 결혼이 성사되는 과정 자체가 사기라는 점이다. 세욱과 진주가 결혼하는 이유는 둘의 사랑이 아니다. 진주는 박선우와의 내연관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고, 세욱은 결혼을 해야 완전한 남자가 된다고 믿는 누나 세영의 말(137)에 따랐다. 세욱을 만나기 전 진주에게 계속해서 선물을 보낸 것도 세욱이 아닌 세영이었다. 결혼이 사랑으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자유연애가 보장된 근대 이후의 결혼 이데올로기일 텐데, 둘의 결혼은 그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졌다. 어쨌거나?결혼 안에서 두 사람은 아내와 남편이라는, 사회가 보장하는 지위를 얻는다.?이성애자 트랜스젠더가 혐오에 부딪히지 않고 이성애 결혼을 하는 것은 어떤 개인에게는 궁극적인 목표이겠으나?이를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면, 소설에서 진주와 세욱이 맞이했던 단순한 해피엔딩도 거짓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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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가족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세욱이 세영의 말을 따른 것은 둘의 관계가 보통의 남매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세영은 세욱의 첫 사랑이었고, 세욱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계기였다. 피로 연결되지 않은 남매라 할지라도 가족 내의 연애는 추문에 가깝다.?세영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세욱과 진주의 결혼식장이다. 세욱의 다른 가족과 친구가 한 명도?오지 않은 식장에 세욱의 유일한 가족으로 참석한 것이다. 이렇게 얼굴도장을 찍은 그녀는 곧 박선우를 찾는다.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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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나리오에서 재현되는 세욱은 트랜스젠더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그녀의 시나리오는 세욱이 세영에게 집착해서 세영이 결혼생활을 유지하지 못했고 결국?성전환을 택한 것도 세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는?식이다. 그리하여 시나리오 속의 세영은 세욱에게 몇 번이나 묻는다. 레즈비언으로는 안 되느냐고. 꼭 성전환을 해야만 하느냐고. 이에 응수하는 세욱의 변론은 애처로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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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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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설 후반부에서 남매의 어머니의 입에서 제시되는 반전, 즉 남매 중 집착하던 역할이 세영이라는 점(258)은 결국 지나치게 정보전달에 치중해서 불편하던 세영의 시나리오 중 얼마가 사실이고 얼마가 거짓일지 궁금증을 일으키며, 작가는 이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소설에서 가장 영리한 부분이다. 세영에게 깜빡 속아넘어간 독자라면 스스로의 선입견, 즉 성소수자가 비성소수자를 끈질기게 좋아할 것이라는 편견에 부끄러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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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소동을 벌이거나 정서불안을 겪는 것이 세욱이 아니라 세영이며, 소설 초반에 암시하던 세욱의 과거사 또한 성전환만이 아니라 세영과의 관계를 포함한 것이라는 점, 그리고 박선우와 안세영이 세욱을 ‘별종’이라거나 ‘특별’하다고 묘사하지만 또다른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박선우와 안세영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설명되기에 작가의 태도가 트랜스/포비아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소설은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치는 사기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인물은 작중에 없다. 작품 내내 유지되던?갈등은 서로가 서로에게 진실을 털어놓음으로써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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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비평에 대한 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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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트랜스젠더를 소재로서 사용하였고, 이를 가볍게 다루지는 않았으나 결국 결혼을 둘러싼?갈등, 결혼상대에 대한 편견과 거짓말에 대한 유비로 풀어냈다는 의혹은 남는다. 세욱과 진주 부부 사이의 갈등이 불가사의하게 가볍게 해소되는 것은 아쉽다. 또 소설의 마지막에?진주가 어째서 아이들과 혼자 있는지, 굳이 세욱을?그 장면에서 배제해야 했는지도 문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16년 현재까지 트랜스젠더퀴어?정체성을 외면하는 한국 문학과 컨텐츠 제작자들이?그 이미지를 남장여자 혹은 말 그대로 여자 몸에 남자의 영혼이 들어간 판타지로만 활용하고 소비하기에, 트랜스맨?인물이 주요하게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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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기 작가는 이전에 게이 아들의 어머니 시점으로 단편을 쓰기도 했다. 트랜스맨을 중심인물로 다룬 소설을 90년대에 썼다는 점, 그리고 그 인물이 아주 평면적이지 않고 온전히 도구적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성실하고 짜임새 있게 쓰인 소설임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결말?이후 이어지는 비평은 소설에서 드문드문 거슬렸던 등장인물의 생각 혹은 망상을 기정사실로 삼아 분석하고 있으니 권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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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젠더퀴어 무성애자
fkvl0327@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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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2017년 1월 18일, FTM으로 쓰인 부분을 맥락에 맞게?트랜스맨, 트랜스젠더퀴어로 정정하였습니다. 작가 임혜기의 주인공 세욱에 대한 묘사는 FTM/MTF, 즉 지정성별을 강조하는 부분이 두드러져 그대로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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