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브라더, 안녕하신가요? ― 마르셀라 이아쿱, <사랑하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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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리 댓글 0건 작성일 16-03-27 16:35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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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읽기는 쉬웠지만 알아듣기는 쉽지 않았다. 심리소설, 이라는 작은 카테고리를 달고 나온 이 책은 아주 치밀하게 ‘책 속의 책’ 구조를 취하며 온갖 풍자와 날카로운 지적들로 차 있다.
?서문에서 스포일러를 할 수밖에 없겠다. 이 책이 퀴어문학으로 분류된 것은 ‘책 속의 책’ 작가이자 주인공인 장 뤽 자메가 스스로를 부정하고 혐오해온-그러나 스스로가 그 ‘환자’임은 너무나도 명명백백히 알고 있었던 동성애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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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죽는다>. 제목을 보고 고른 책이었다. 그렇지. 사랑을 하면 우리는 일말의 죽음을 맞이하지.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안일한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장 뤽 자메의 손과 입을 빌어 마르셀라 이아쿱이 ‘이상성욕자’1)들의 사랑을 말하는 것은, 단순히 쓰여진 대로 사랑이 위험하고 잔혹함을?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책을 사흘 만에 완독하고 몇 주간 머리를 싸매며 다른 독자들의 감상을 찾아보고 다시 책을 읽기를 반복하다 내린 결론은 이아쿱이 이 책을 통해,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통속적이었고 이제는 정치적으로까지 변해가는 이슈, 바로 사랑을 매개로 많은 부조리들을 지적한 거라는 추측이었다.
?물론?사랑은 위험과 완전하게 분리되지?않는다.?누군가는 분명히 파괴하고 억압하며 사랑하고 있었고 다른 누군가는 분명히 눈을 멀게 하고 몸을 내던지며 사랑하고 있었다.?그것들은?쉽게 볼 수 없지만 그런다고 없는 것은 아니었던 일들이고?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이아쿱은 바로 이런 것을 모조리 들춰내어?보여준다. 그리고 깊이 찌른다. “당신들이 억압하려 드는 가장 자유로운 가치인 사랑에도 끔찍한 사실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을, 그것으로,?지배함으로 인해?억압이 숨겨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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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쿱의 비판은 정확하다. 장 뤽 자메의 직업을?정신과 의사로 설정한?것은 다양한 내담자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 그가 스스로의 동성애를 ‘치료’하고 억제하기 위해 정신의학을 배우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끝내 그 동성애와 더불어 자신이 규제를 주장해왔던 ‘억압하는 사랑’에 의해 의학계에서의 입지를 모두 잃는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다.(지나치게 완벽한 호모포빅 언어 구사는 우습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리뷰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퀴어에 관한 것보다도,?이아쿱이 공권력, 지배층을 상대로?취하는 강경한 태도다.
?나는 정말로 오랫동안 거짓말쟁이로 살았고 그 은폐야말로 진정 용기 있는 행위였다고 자부한다. 길에서 얼싸안고 입을 맞추고 자기들의 비밀을 부모한테 또는 텔레비전에 나와 공개하는 걸 용기인 줄 아는 동성애자들을 보거나, 법률에 맞서 그네들을 결혼시켜 주는 시장 나리를 영웅 취급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한심해서 코웃음이 나온다. 감춘 채 사는 것, 자신의 충동과는 정반대로 사는 것이 요즘 같은 세상에서 정체를 드러내는 것보다 몇 곱절 영웅적인 행위이다.(173)
?새 법률은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이용한 캠페인을 통해 국민들에게 억압적 사랑에 대한 경계심을 키우고,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커리큘럼에 스스로를 통제하고 보호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는 내용을 넣기로 했다. 동시에 억압적 사랑을 감시하는 고등 위원회도 창설해 광고, 영화, 서적 등을 주의 깊게 검열해 정열적 사랑을 예찬하는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이 위원회에는 위반을 저지른 매체의 제작과 상영, 배포를 금지할 권리, 그리고 이 무서운 재앙의 씨가 불러오는 폐해에 관해 각 매체에 설명을 덧붙이도록(담뱃갑에 폐암의 위험을 경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방침이다.(191)
?소설의 어조는?전체적으로 이렇다. 이쯤에서 제목의 본질로 돌아가보면, <사랑하면 죽는다>의 ‘죽임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죽는 것은 사랑하는 ‘나’이다. 사랑하여-억압당하는, 스스로 굴레에 갇히는 ‘나’이다. ‘나’를 죽이는 것은 다름아닌 감시이며 제한이고 지배이다. 그것은 ‘억압적 사랑’으로 치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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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06년에 발간되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제목만을 보고 고른 책이 신기할 만큼 2016년에도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많은 것을 사랑한다. 친구나 연인, 부모, 형제를 넘어 우리가 사는 곳, 생활하는 방식, 자유와 선택. 때로는 아슬아슬한 위험까지도. 그러나 우리는 곧잘 자발적인 사랑에서 자의를 빼앗기고 있지 않은지. 그것을 더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익명의 섹스, 자위, 혹은 상업적인 섹스는 적어도 아무한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공권력과 통치자들이 이 점을 훤히 알면서도 입 밖에 내기를 꺼리는 것은 사람들을 섹스에서 얻는 것보다 훨씬 폭력적이고 사나운 정열에 희생시키고 싶은 까닭이다. 공권력은 순전히 성적인 유혹이 가볍고 유쾌한 관계를 만든다는 것도 알고, 그런 관계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뭘 주고받는지 실은 꿰뚫고 있다는 것도 안다. 아울러 사람들이 섹스를 위한 섹스가 대단히 특별하고 신성한 행위라는 진부한 환상을 품은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도 안다. 공권력은 일체의 감상적 사랑을 배제한 섹스만으로는 대단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없음을 간파했다. 그러므로 대중을 시장 원리에 복종시키려면 뭐니뭐니해도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공권력은 대중이 이 세상의 문제점을 들춰내지 않고 잠들어 있기를, 욕망과 꿈에 떨면서 몽롱하게 취해 있기를, 군소리 없이 사랑을 따르는 것처럼 다른 압제와 모욕도 얌전히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것이다.(85)?
?장 뤽 자메는 ‘이상성욕자’를 강력하게 처벌하지 않는 공권력을 이런 식으로 비판한다. 뒤이어 나오는 구절에서도 부패한 권력들과 자본주의 사회가 사랑-사랑하는 사람을 어떤 식으로 훼손하고 죽이는지를 밝힌다.
?하지만 사랑을 이용해 알토란 같은 이득을 챙기는 쪽은 두말 할 필요 없이 세계화된 자본주의 세력일 것이다. 대기업과 은행과 영화 산업 말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기분 좋게 들떠 있고, 인생이 장밋빛인 줄 알고, 뭐든지 받아들이고, 어떤 희생이라도 개의치 않으며 자기 자신조차도 잊어버리는 법이다. 설령 사랑이 종말을 맞는다 해도 그의 기억과 꿈은 기다리라고, <언젠가는 틀림없이 또 그런 일이 찾아올 것>이라고 속삭인다. 귀를 간질이는 그 한마디로 인해 우리는 참고 따르는 것이다.(86)
?이렇듯 이아쿱이 압제에 대항하여 외치는 바는, 왜 사랑하는 자들이?목숨을 걸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또한 철저하게 현실적인 시선과 지식을 기반으로,?사랑하는 자들에게도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할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우리의 사랑을 하자. 지난 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이었던 "사랑하라, 저항하라"와 비슷한 결을 가진 말이다.
?이 책은 21세기에 조지 오웰의 <1984>를 다른 방식으로, 다른 매개로?쓴 책이나 다름없다. 두 책에서 '죽는' 것은 모두 사랑하는 자들이다.?사랑하면 죽는다. 그러나 우리는 저항할 것이고 저항해야 할 것이다. 사랑이 사랑으로 완전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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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track7of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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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 뤽 자메는?타인을 파괴하고 학대한 사람을 '이상성욕자'라고?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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