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해주지 못할 피해보상 - 전아리, <내 이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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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빼어날수 댓글 0건 작성일 16-03-15 01:1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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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있는 감독이란 죽은 떠돌이 개의 사체를 찍기 위해 찾아다니는 쪽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개를 향해 트럭을 내모는 편이라는 걸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내 이름 말이야.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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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문학 천재라 불리며 문단의 관심을 받아온 전아리 작가의 첫 소설집 ‘즐거운 장난’에 3번째로 수록된 단편 ‘내 이름 말이야’.?어딘지 독특한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을 보고 난 뒤 제일 처음으로 든 생각은 숨이 탁 막히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아마 이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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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은 다큐멘터리를 찍는 아주 평범한 학부생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지위는 조금 버거울지도 모르겠다. 그는 교내 다큐멘터리 동아리의 부장을 맡고있다. 하지만 그의 지휘 아래 만들어지는 다큐멘터리들은 단 한 번도 대회란 대회에서 이렇다 할 실적을 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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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모전에서 또다시 떨어지고 부원 모두가 예민해진 어느 날, 조금 사나운 분위기 사이 주인공은 ‘그’를 문득 떠올린다. 맞은편 빌라에 사는 그 남자.
와인색 계열의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팬티는 거의 검은색만 입는, 가슴이 풍만한, 다리의 알통을 곧추세운 채 하이힐을 신고 주인공을 스쳐 지나갔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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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직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의 친구 중 하나는 스너프 필름에 관해 이야기하다_예찬에 가까웠다_갑자기 주인공의 작품을 아마추어라 칭하며 쐐기를 박았다. 특이하지 못한, 시선을 끌지 못하는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비화제성에 대해 말하던 친구는 주인공에게 스너프 필름을 건네주고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현재, 주인공은 개의 사체를 찾기보다 개를 향해 트럭을 내몰기로 한다. 처음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해도, 결국 트럭의 손잡이를 손수 잡은 것과 마찬가지가 돼버린 그는 화장품 세트를 사 들고 부원들과 함께 맞은편 빌라의 남자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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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다시피 그는 트렌스젠더였다. 에스트로젠 주사에 의지해 마냥 건전하지는 못할 업소에서 일하는 그는, 그리고 그의 집은 어딘지 어둡고, 습기 찬 느낌을 주었다. 부원들의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의 상상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리라. 가는 몸매에 섹시한 얼굴을 가진 여자이기를 바란 걸까. 덩어리에 가까워 보이는 커다란 가슴과 화장실에 놓인 남성용 면도 도구들이 주는 이질감은 기대에 부풀어있던 그들의 눈을 냉소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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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을 읽으며 주인공, 그리고 부원들의 태도가 마치 우리들의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즉 하염없이 흘러가는 사회 속 우리들의 편견, 실망, 그리고 곱지 않은 눈초리가 주인공과 부원들의 행동을 통해 보이는 게 아닐까.
윗옷 사이로 흘러나온 브래지어, 화장실에 놓인 면도 도구, 치마 사이로 미끄러지는 듯 보이는 그의 시선,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찾아간 업소. 모든 것이 그 몰래 영상 속에 담겼다. 마치 그 몰래 모두가 그를 비웃는 것 같이 보였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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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하나가 되어, 오직 그만을 제외하고 그에게 보이지 않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가령, 이 소설 속에서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라고 불리지 못했다. 인정 받지 못한 것이다. 그는 뒤늦게 자신의 예상과는 많이 다른, 처참한 다큐멘터리_결국 그 다큐멘터리는 대상을 탔다_를 보게 된다. 마냥 좋은 사람들이라 믿었던, 그들에게서 배신당한 기분은 과연 어떨까. 단지 내가 되었을 뿐인데 이 세상, 사회에서 동떨어져, 마치 아무도 없는 바다 위 섬이 된 듯한 기분을 그는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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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봤어요. 홈페이지 가보니까 볼 수 있길래. 잘못 나온 게 하나 있더라구. 내 이름 말이야, 모영욱이 아니라 ‘모영은’이거든. -내 이름 말이야.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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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소설의 제목이 가진 뜻은 그가 아닌, 그녀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편견과 실망과 눈초리를 향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악다구니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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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주인공은 발신자가 불분명한 택배 하나를 받는다. 그 안에는 스너프 필름이 담겨 있었다. 한 사내의 성기가 잘려나가는 짤막한 스너프 필름 속, 터져 나오는 비명을 주인공은 그의 소리라 생각할까, 혹은 그녀의 소리라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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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이 누군지 아세요? 옛날에는 명부를 조작하고 도망친 동방삭이었는데 지금은 우리 같은 부류래요. 흐흐. 그럴 만도 하죠. 저승명부에는 남자로 되어 있는데, 잡으러 가면 여자뿐이니 오죽 황당하지 않겠어요?...(중략)...죽으면 염라대왕한테 피해보상청구를 몇 배로 할 거라고 했어요. 명부에 여자로 올릴 걸 남자로 잘못 기재해 내 인생을 이렇게 조져버린 그 정신적 살인에 대한 피해보상을. -내 이름 말이야.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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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그 누가 그녀에게 피해보상을 해줄 수 있을까. 저승엔?염라대왕이 있다 치더라도, 염라대왕도 없는 이 세상에서, 수군거리기도 바쁜 우리 가운데 그 누가 그녀에게 피해보상을 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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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빼어날秀
19살. 나의 문학이 지구의 자화상이 될 때까지.
피드백은 늘 감사합니다:)
ask95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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