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 모두 홀로 -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싱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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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림 댓글 0건 작성일 16-03-09 23:16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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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싱글맨>, 조동섭 옮김.?(그책,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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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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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사건이 발생한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그것은 갈무리 되고, 어떠한 결말을 맺는다. 그 후에 관객들은 그 결말에 대하여 즐거워하거나 슬퍼하면서 퇴장하지만, 서사 안에 남겨진 자는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사건이 남긴 후유증들은 삶의 미세한 틈으로?속속 들어와?박힐 것이다. 남겨진 자는 그것을 참아 내거나, 그것에 굴복하거나, 혹은 무력해지는 방법으로 하루하루를 스쳐갈 것이다. 그러니 일상은 오로지 남겨진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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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싱글맨>?은 남겨진 자 ‘조지’의 어떤 하루를 그려내고 있다. 특정한 하루가 아닌 ‘어떤’ 하루라 지칭하는 이유는 이 작품 바깥에 있는 조지의 또 다른 하루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지는 연인 ‘짐’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그의 부재를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었고, 있고,?계속 있을) 일상 곳곳에서 확인하고 깨달으며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맞붙여왔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흘렀고, 그러다 보니 볼품없이 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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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는 그 누구보다 ‘홀로’다. 심지어 자신의 육체 앞에서도. 그는 본래의 자신, 사람들이 원하고 기대하는 모습(조지는 이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을 연기하는 자신, 그리고?타인을 명확하게 구분하고?경계 짓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깨닫게 되는 건, 자신과 누구보다 가까웠던 짐이 곁에 없다는 사실이다. 맥락 없이 자신을 향해 쳐들어오는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슬픔으로 인해?조지는 연인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부분들까지 서슴없이 표출한다.??‘조지 아저씨’,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자신을 느낀다. 인간은 때때로 무언가를 잃었을 때야 비로소?진정한 자신을 드러내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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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조지, ‘과거’라니까! 어떻게 내 말뜻을 모른 체 해?”
“과거란 지나간 무엇을 가리키는 말이지.”
“아니 이런, 어떻게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어?”
“아니, 샬럿. 정말이야. 과거는 지나간 일이야. 사람들은 과거를 지나간 일로 생각하지 않지. 그래서 박물관 같은 걸 만드는 거야. 그렇지만 샬럿이 원하는 건 과거가 아니야. 영국에서 과거를 찾는 게 아냐. 뭐, 이 경우에는 샬럿이 찾으려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게 옳겠지.”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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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짐의 부재가 확인된 그 시점부터 조지에게 과거란 추억이나 기억이 아닌 그저 ‘지나간 일’이다. 아무리 과거를 미화하고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을 품는다한들, 앞으로 계속될 노화와 매일 아침 부엌의 스토브 앞에서 잠깐씩 스치던 짐의 팔꿈치를 떠올리고, 슬퍼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커피 내릴 준비를 하는 자신의 어떤 하루는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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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조지는 자신의 내부로 침잠하고 몰입하고 파헤친다. 짐에게서 떨어져 나온 자신에 대해 사유한다. 하지만 내리게 되는 결론은 언제나 간단하다. 트럭에 치인 사람이 자신이었다면, 샬럿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을 사람은 짐이었을 것이라는,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라는, 그야말로 우연에 관한 심심한 진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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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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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맨>은 아침에 홀로 일어나 자신의 삶이 ‘급히 끝날까 두려워’ 하며 죽음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해, 온갖 사유로 뒤덮인 하루를 보낸 후, 침대에 누워 ‘새로운 짐을 찾아야 한다고’, ‘사랑을 해야’,‘현재를 살아가야 한다’고 미약하게나마 희망을 좇기로 마음먹지만, 결국 두려워하던 ‘급한 끝’을 향해 달려가는 조지의 하루에 관한 이야기다. 나와 당신은 그의 하루에서 도대체 무엇을 읽어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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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는 자신이 두려워하던 ‘급한 끝’을 기어코 맞이하며 깨달았을 것이다. 남겨진 자는 철저하게 혼자라는 사실을. 우리가 서로를 너무나 많이 사랑해도, 연인보다 먼저, 혹은 늦게 세상을 떠난다하더라도 결국 당신은 완전한 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물론, 조지의 죽음이 누군가에겐 슬픈 결말일 수 있겠으나, 나는 이 끝이 조지의 어떤 하루들이 모여 이뤄낸 성과처럼 느껴진다. 조지는 짐과 긴 시간동안 사랑을 했고, 짐이 떠난 후, 사랑이 남긴 빈자리에 서서 자신의 나름대로 남겨진 자의 본분을 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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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사랑과 사랑이 떠나고 남긴 여진을 온몸으로 견뎌낸 바보들만이 오롯이 혼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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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림 (o00itismi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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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젠더 판섹슈얼.
파란색 스웨터를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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