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를 담은 종이비행기 - 박선희, <줄리엣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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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홍 댓글 0건 작성일 16-02-20 00:36본문
박선희 장편소설?<줄리엣 클럽> 비룡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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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이 소설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줄리엣 클럽은?프리즘을 통과한 햇살처럼 각각 다른 빛으로 빛나고 있는 낭랑 17세 소녀들의 사랑 이야기이다. 청소년 소설 특유의 발랄함이 특징인 이 작품을?전지적 퀴어 시점으로 읽어본?이 리뷰에서 다루게 될 가영과 아람의 사랑 말고도, 애간장 녹이는 짝사랑, 순결 콤플렉스를 밀쳐내고 벌이는 제법?정열적인 사랑, 10대 소녀답게 스타 가수에게 쏘아올리는 사랑 등 여러 형태의 사랑이 여러 색으로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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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변화를 두려워하는 곳이 바로 학교야.'"-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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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목차부터, 이반 사냥이라는 챕터가 버젓이 쓰여있는 만큼 가영과 아람의 사랑은 주인공과 가깝지 않은 관계에 있음에도 소설의 큰 지분을 차지한다. 학교라는 공간에 같이 존재하는 것, 그리고 그 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는 것. 그것이 가람과 아영이 주요인물로?등장하는 이유였다. 소설에서?일명 '사냥개'하고 불리는 학주는 다른 학교에서 일어난 퀴어 파티 소동에 영향을 받아?'이반 사냥'을 벌이게 된다. 연인 관계인?아람과 가영이?그 사냥개의 먹잇감인 셈이다. 아람이 시를 적은 종이로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면 가영이 받아 읽는다니, 작가는?무척 로맨틱한 방법으로 둘을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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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소망은 행복해지는 건데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울까."' - 1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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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작품은?학교라는 한정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퀴어 서사의 '정석'을 도장 찍어놓듯 찍어놓았다고 생각한다. 아람과 가영은 열렬히 사랑하고, 학주는 전형적인 '악당형 포비아'로 등장해 악담을 퍼붓고, 가영은 자유를 외치는 투사처럼 삭발까지 감행하며 반항하고, 두 아이들의 엄마가 학교를 찾아오고.?아무튼 결국엔 미래를 기약하며 둘 중 한 명이 반 강제로 전학을 가게 된다는 극적이면서도 평범한 서사. 어째서 소설 속?두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애절함'을 갖고 '성숙한'?연애를 해야했으며, 사회의 약자로써 받는 압력으로 인해 헤어지게 된다는 '비극'을 겪어야 했을까? 물론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청소년 소설 특유의 극적인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 것들이 대부분이겠지만,?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역시 여고생들의 이야기이니만큼 그녀들의 마지막도 우중충하지 않고 밝게 반짝였다. 수십개의 종이비행기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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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한다는 건 의지의 문제지만 사랑한다는 건 의지를 벗어난 문제야. '사랑하겠다.'가 아니라 '사랑하게 되었다.' 뭐 그런 거지. '나는 같은 남자 혹은 같은 여자를 사랑하였다.'가 아니라 '사랑을 하게 됐는데 그게 같은 남자 혹은 같은 여자였다.' 가 되는 거고." - 102p
'"걔네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할 뿐이야.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거지. 머리가 복잡해서, 그냥 불쌍하다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어."' - 2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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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여러 인물들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받아들이는?반응도?제각각 담아내었다. 언제나 그렇듯?생각이 조금?성숙해 독자의?가이드를 자처하는 인물, 별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인물, 그리고 나머지 호모포비아들로 갈려 하나씩 저마다의 결론을 내려간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소설을 읽으며 군고구마 한 소쿠리를 물 없이 먹는 기분이었다. 분명 이 소설을 처음 접했던(무려 4년 전) 시기에는 고개까지 끄덕여가며 읽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만큼 퀴어로?살아가며 많은 것들을 새로 배운 것 같다.
?그래도 그나마 마음에 드는 인물은 있었다. 떠나는 가영의 뒤로 수많은 종이비행기들이 떨어질 때, 아이들에 합세해 종이비행기를 날리고서 "이것 말고 아무것도 해 줄 게 없구나." 라며 중얼거렸던?영어 선생님. 소극적이지만, 변화는 그 작은 행동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제일 마음에 드는 대사 한 줄로 설레었던 첫 리뷰를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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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자유롭게 해야 자기 자신도 자유로워질 수 있어. 수업은 이것으로 끝!"'-2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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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홍 [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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