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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꿈 꾸세요
저    자김멜라
장    르 단편집
출판사문학동네 / 2022
 ISBN  9788954677707


※ 2022년 무지개책갈피 퀴어문학상 수상작.



김멜라의 소설세계를 향한 열광의 시작점인 「나뭇잎이 마르고」는 대학 선배인 ‘체’가 오랜만에 ‘앙헬’에게 연락을 해오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이때 우리를 소설 가까이로 잡아당기는 힘은 “한글 자음을 온전하게 발음하지 못”(58쪽)하는 탓에 중간중간 고인 침을 삼키느라 말을 멈추는 체의 모습이다. 체는 불분명한 발음으로 앙헬에게 말한다. 그녀의 할머니가 며칠째 한끼도 먹고 있지 않아 가족 모두가 걱정하는 가운데, 앙헬을 보고 싶어한다고. 할머니를 위해 잠깐 시간을 내어줄 수 없냐고. 앙헬에게 체는 어떤 사람이었나. 짧은 머리에 겨울의 나뭇가지처럼 팔다리가 앙상했던 체는 “보는 사람에게 안타까움과 동시에 옅은 안도감을 불러일으”(65쪽)키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분명히 요구할 줄 알며, 준 만큼 되돌려받지 못하더라도 다시 자기의 것을 내어주는, “다 헤아릴 수 없는 크고 높은 면이 있”(75쪽)는 사람이기도 했다. 또한 여자와 나누는 사랑을 원하고 그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한번은 앙헬에게 ‘둘이 같이 살자’며 청혼을 해오기도 했었다. 그런 체를 만나기 위해 앙헬은 공주로 향할 결심을 한다.

「링고링」은 퀴어로 자신을 정체화하지 않은 청소년 화자의 모습에 집중하며 그가 느끼는 혼란스러움과 들뜬 충동을 세심하게 담아낸다. 사귀는 사람이 동성인 여자라는 짝꿍의 말에 “웩, 너무 이상하다”(14쪽)라고 반응했다가 그애의 무리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한 적이 있는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누구와도 가까워지지 말”(17쪽)자는 규칙을 세운다. 하지만 선생이 “7번 김영주!”(18쪽)라고 출석을 부르자 ‘나’는 규칙을 잊고 그애를 쳐다본다. 자신과 이름이 같은 아이. 자신이 돌아봤을 때 마주보며 웃어준 아이. ‘나’는 그애와 친구가 되고 ‘운명처럼’ 함께 영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영주는 ‘나’의 외갓집이 있던 곳으로, ‘나’는 종종 엄마를 따라 영주에 갔다가 한번은 엄마의 친구인 ‘링고 이모’를 만난 적이 있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엄마와 링고 이모와 함께 셋이서 영주를 돌아다니는데, 두 사람을 보며 왠지 묘한 기분을 느꼈었다. ‘나’는 영주와 함께 여행하는 동안 그날의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영주야, 난 너랑 같이 있어서 좋아. (…) 좋은 만큼 무서운 마음이 들지만 그것보다 더 크게 좋아. 우리 엄마도 그랬을까. 엄마도 링고 이모랑 그랬을까.”(46쪽)

우리 사회의 가장 첨예한 이슈인 퀴어와 장애 문제를 서정적이고 신비로운 문체로 그려낸 「나뭇잎이 마르고」와 「링고링」을 읽은 우리에게 「저녁놀」은 전혀 다른 스타일로 말을 걸어온다. 레즈비언 커플인 ‘지현’과 ‘민영’은 “두 여자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애정 표현을 하기 녹록지 않은 세상”(98쪽)이라 서로의 애칭을 ‘눈점’과 ‘먹점’으로 정한다. 별명 덕분에 애정 표현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두 사람은 “자신들을 둘러싼 언어의 속박을 유희로 바꾸었으며 점점 더 둘만의 비밀 언어를 늘려”(99쪽)간다. 이를테면 ‘못생긴 말’인 ‘모텔’은 ‘도서관’으로, ‘콘돔’은 ‘책’으로, ‘섹스’는 ‘독서’로. 서로의 몸에 집중하며 충만한 기쁨을 만끽하던 두 사람은 사귄 지 오 주년을 기념해 딜도―두 여자의 비밀 언어로는 ‘책갈피’―를 구매한다. 그것이 바로 딜도이자 책갈피인 ‘나-모모’가 두 여자의 집으로 오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모모의 눈으로 바라본 두 여자는 답답하고 한심하기 그지없다. 자신을 그대로 서랍에 처박아둔 채 한 번도 제대로 쓰지 않는 것도 모자라 신성하고 지적인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대파를 정성 들여 가꾸지 않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표범 인형에게 ‘표표’라는 애칭을 붙여주며 소중히 대한다. 안 그래도 좁은 집에 대파까지 키우게 되면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던 모모에게 또 한번의 큰 시련이 닥친다. 눈점과 먹점이 공간을 마련한답시고 필요 없는 물건들을 정리해 버린다는 것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과 더이상 읽지 않는 책들이 쓰레기봉투에 담겨지는 데 이어 모모까지 봉투에 들어가고 만다. 위대하고 고귀한 나를 어떻게 버릴 생각을 한단 말이지? 모모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오혜진이 해설에서 “표표와 파파야와 모모가 함께 있는 모습, 용도 변경과 함께 자기 변신을 꾀한 유연한 신체들이 함께하는 곳에 드리워진 ‘저녁놀’은 성 전쟁sex war의 시대에 김멜라가 그려낸 가장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이다”(332쪽)라고 언급한 것처럼,「저녁놀」이 펼쳐 보이는 상상력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는 눈점과 먹점을 자신과 구분 지으려는 딜도의 시도가 엉뚱하고 귀여운 방식으로 해소됨으로써 세 인물이 함께하는 마지막 장면을 우리가 어떤 두려움과 불안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일 것이다.

표제작인 「제 꿈 꾸세요」 또한 이러한 상상력의 연장선에서 바라볼 수 있을 듯하다. 화자인 ‘나’는 지금 허공 위를 걷는 중이다. 아래로 얼굴이 파랗게 된 채 죽어 있는 자신이 보인다. 그러니깐 마치 “튜브에 든 물감을 짜는 것처럼”(268쪽) 죽어 있는 자신의 몸에서 쓰윽 빠져나온 것이다. 사인(死因)은 기도 폐쇄와 호흡곤란. 그렇다. ‘나’는 아몬드크런치크랜베리초코바를 먹다 어이없게도 목이 막혀 죽고 만 것이다. 그런데 죽어 있는 ‘나’의 앞으로 ‘챔바’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혹시 말로만 듣던 천사인가? 챔바는 자신을 가이드라고 소개하며, ‘길손’이 된 ‘나’는 지금 당장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어디로? 다른 사람의 꿈속으로. 챔바의 말에 따르면 길손은 자신의 상상력 안에서 다른 사람의 꿈으로 갈 수 있다. 그 꿈에 들어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죽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나’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인과관계를 부여해 삶을 완성시키는 일이자 한편으로 “내 시신을 발견하고도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고통받지 않을”(274쪽) 사람을 고르는 일이기도 하다. 과연 어떠한 상처도 주지 않고 매끈하게 그 일을 완수할 수 있을까? 그 물음 앞에서 김멜라는 다른 사람의 꿈속으로 향하는 여정을 자신의 시신을 발견할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 “일어났을 때 웃게 되는 꿈”(291쪽)을 꾸게 하는 것으로 바꾸어낸다.

[알라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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